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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제목(Title) :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707


사건종료일 : 09


사건내용 :
<사건배경>
‘직선개헌’, ‘군부독재 타도’ 등 민주화를 향한 범국민적 열기가 전국적으로 뜨겁게 분출했던 ‘6월 민주화 대투쟁’은 이른바 ‘6.29선언’으로 일단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6.29 선언은 군부독재가 고조된 범국민적 민주화 열기를 희석화하고, 이를 여야협상이란 장내 테이블 안으로 끌어들여, ‘입도선매’하고자 하는 기만적 속셈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민중의 생존권 보장이 빠진 허구적 성격의 민주선언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민주화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직선제 개헌’을 비롯한 8개항의 ‘민주화 선언’은 일단 6월 민주화대투쟁의 승리를 의미하는 일단의 성과이었다. 그리하여 국민대중 속에 뿌리깊은 패배주의가 불식되고, 국민대중이 주인되는 민주화란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과 실제로 국민의 힘은 그것을 쟁취할 수 있다는 자각이 용솟음치게 되었다. 이러한 자각은 곧 사회 각계각층의 생활현장에서 그동안 억눌려 온 생존권 보장과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운동’으로 가시화되어 등장하나 외로운 외침이 아니라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7-8월 한여름의 두달 동안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 노동자 대중투쟁은 민주화의 내용을 더욱 넓고 깊게 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군부독재 체제가 6월 민주화 대항쟁에 밀려 그 억압기구를 더 이상 밀고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6·29 선언을 발표하자 그 체제의 이완된 틈을 비집고 나온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가 ‘민주노조 건설’,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투쟁으로 나타난 전국적인 노동자의 '대중'투쟁이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은 또한 6월 민주화 대항쟁의 성과에 힘입은 것이자 그 부분적 성과를 보완, 발전시키는 민주화 투쟁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7,8월 노동자 대중투쟁', 기사연리포트 3,(민중사 1987) 43쪽)

<사건내용>
1987.6월항쟁 이후 7월부터 9월까지 전지역과 업종에 걸쳐 폭발된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투쟁. 6월항쟁의 과정을 통해 고양된 민주화 열기는 6·29선언 이후 노동자들의 생존권확보 및 조직결성 움직임이 분출, 7.5 노조 불모지대였던 현대그룹에서 현대엔진이 노조결성에 성공한 데 이어 7.16에는 현대미포조선 노조결성 신고서류 탈취사건이 발생, 회사측이 전국민적인 지탄을 받는 가운데 파업투쟁은 독점대기업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다. 7월 사순 영남권으로 확산된 투쟁은 ㈜통일을 중심으로 마산·창원의 대공장을 휩쓸면서 8.17·18일 4만여명이 참여한 울산 현대그룹 노조연합 가두시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부산으로 확산된 파업투쟁은 옥포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가두시위과정에서 8.22 이석규가 직격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으로 발전하면서 <이석규열사 민주국민장>을 계기로 수도권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후 투쟁은 수도권의 중소기업·비제조업 등으로 확산되어갔지만 8.11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폭력·파괴·불법행동 비난>과 <공권력개입 요청>을 계기로 정부의 물리적 개입과 이데올로기 공세가 강화되면서 투쟁의 파고는 9월부터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소강상태로 빠져든 8월말부터 운수·광산·사무·판매·서비스·기술직 등 비제조업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9월 이후 계속되었다. 7월에서 9월까지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의 연인원은 2백만, 파업건수는 3,300건에 달하며, 1,200여개의 신규노조가 결성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무려 3개월 동안 전지역·전산업에 걸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노동자 대중투쟁이었으며, 대부분 노동법의 울타리를 넘어서 <선파업· 후협상>을 관철시키는 탈법투쟁, 가두시위로 발전, 격렬함에 있어서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87년 투쟁은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건설로 이어지는 자주적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시키는 근원지가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결성된 신규노조들은 민주노조운동의 물질적 토대가 되었다. (한국사사전편찬회 편, ??한국근현대사사전', (가람기획 1990), 519~520쪽) 7-8월 노동자 대중 투쟁은 그동안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 및 폭압적 노동통제 속에서 신음해 온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정당한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떨쳐 일어난 상승의 몸부림이었다. 거의 전 사업장에서 한결같이 노동에 대한 정대한 대가 (임금인상), 인간적 대우 요구가 전면에 부각되어 생존권 보장은 물론 권위주의적 관리체제의 타파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번 노동자 투쟁은 이전의 단순한 임금인상 투쟁이나 일상투쟁에서의 생존권 투쟁과는 상이한 수준의, 진일보한 측면을 드러내 보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임금인상 요구나 노동조건 개선 요구와 더불어 노동조합 결성, 또는 어용노조 민주화 요구가 많은 사업장에서 강하게 분출된 점이다. 이러한 민주노조쟁취투쟁은 그동안 억눌려 온 노동자들의 초보적 권리인 노동3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대한 정치적 자각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이전의 단순한 생존권투쟁에서 한걸음 나아간 노동자 대중의 의식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투쟁의 성격은 단순히 분배의 몫을 크게 해달라는 이익분쟁의 측면뿐만 아니라 노사간의 역학관계의 재편과정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점에서 7-8월 노동자투쟁은 6월 민주화 투쟁의 일정한 승리로 열려진 정치사회적 공간 속에서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생존권 보장과 노동현장의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벌인 투쟁으로서 6월의 범국민적 민주화 열기를 기층 민중차원에서 새롭게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7-8월 노동자 투쟁의 특징> 7-8월 노동자 투쟁은 무엇보다도 전국적으로 전 산업에 걸쳐 폭발적 양태를 띠며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점에서 일차적 특징이 있다. 8월 중순에 들어서는 하루 평균 300개 이상의 사업장에서 파업농성 투쟁이 진행되는 등 전국 도처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요구투쟁이 봇물 터지듯 분출해 ‘사실상의 총파업’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은 전국적 연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들불처럼 번진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 둘째, 이번 투쟁은 소수 선진 활동가들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기획되고 지도된 것이 아니라 6월 민주화 대투쟁의 성과물로서 6.29선언 이후에 열려진 정치 사회적 공간의 틈을 비집고 그동안 억눌려온 노동자 대중의 욕구가 터져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번 투쟁은 투쟁 주체면에서 볼 때 광범한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자발적 투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셋째, 요구의 수준이 아직 개별 사업장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노동3권 보장, 8시간 노동제, 생활임금 보장, 최저임금제 등 개별 사업장 차원을 넘어서는 정치적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민주노조쟁취가 중심적인 요구의 하나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노동자대중 사이에 권리획득을 위한 단결과 조직의 필요성에 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넷째, 투쟁 형태를 보면 파업, 농성, 시위 등의 집단행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세’를 형성한 다음 협상으로 이어지는 선농성 후협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기존 법절차(노동쟁의조정법에 의하면 노사협상이 결렬되고 20-30일의 냉각기간 경과된 후에 단체행동 가능)를 무시한 비합법투쟁의 성격을 갖는다. 또한 이전의 작업장 농성, 사무실 농성뿐만이 아니라 대중세를 결집한 후 가두로 진출하여 시위를 벌이는 등 투쟁이 적극화, 격렬화한다. 이 과정에서 중장비를 동원, 경찰력을 무력화시키는 등의 실력행사가 시도된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다섯째, 지역별, 재벌그룹별, 산업별 동맹과 연대투쟁이 주요한 투쟁형태로 창출되었다. 지역별 동맹파업의 형태는 울산, 광주, 부산, 전주, 서울, 군산, 포항, 안양 등지에서의 운수노동자 동맹파업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또 재벌 계열별 동맹파업은 대우중공업의 경우 창원(8월4일부터), 인천 (8월 6일), 영등포, 안양 (8월 7일), 네 군데 사업장의 동맹파업과 울산 중공업 지역내 현대그룹계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동맹파업, 울산 현대정공과 창원 현대정공의 동맹파업 등에서 나타나며, 특히 현대그룹 노동조합 협의회를 통한 연대투쟁 등은 한국노동운동 사상 새로운 투쟁형태를 정립한 것이다. 이는 독과점화의 진전에 따른 자본의 동맹, 기업간 상호연관이 노동자의 연대투쟁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마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섯째, 7-8월 노동자 대중투쟁은 중공업, 화학공업 지역에서 폭발되어 경공업지역 및 기타 지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대기업이 요구사항 타결에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이전과는 다른 특징으로 향후 노동운동의 주축이 바야흐로 경공업, 중소기업에서 중화학공업, 대기업, 여성노동자 중심에서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7-8월 노동자 대중투쟁', 기사연리포트 3, 민중사, 1987, 46~51쪽)


사건사전번호 : H-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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