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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대표 대통령후보 전국추대위원회 결성대회

제목(Title) : 민중대표 대통령후보 전국추대위원회 결성대회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71115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7.11.15 민중대표 대통령후보 전국추대위원회 결성대회 / 1987.11.23 백기완 후보 등록 / 1987. 12.12 백기완 후보 사퇴

<사건내용>
87.11.1 ‘서울노동조합운동연합 창립대회’에 격려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백기완 선생을 수행하였던 이애주 교수 등은 독자후보론을 지지하고 있던 여러 사람들과 시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후 백기완 선생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11.11 명동성당에서 11개 대학 학생과 노동자, 재야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백기완 선생 대통령 후보 임시추대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11.15 옛 서울고 자리에서 ‘민중대표 대통령후보 전국추대위원회 결성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서명작업 및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학생운동에서는 11.11 성균관대를 중심으로 ‘경인지역 민중정당 결성 및 민중후보 학생추대위원회’ 결성식을 갖고 본격적인 선거투쟁에 돌입했다. 이 흐름은 당시 학생운동에 소수를 점하고 있던 ‘제헌의회그룹’과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백기완은 11.23에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범민주세력의 대연대 하에서 민주연립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창하였다. 같은 날 동국대에서 ‘민중대표 백기완 선생 선거운동 전국본부 발대식’을 열고 민중독자후보진영은 본격적인 선거투쟁에 돌입하였다. 12.6에는 30여만명의 군중이 집결한 가운데 대학로에서 집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백기완 후보는 군정종식 및 민주연립정부 수립을 위한 김대중·김영삼·백기완 3자회담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12.12 대학로에서 열린 ‘군정종식과 민주연립정부쟁취 국민총궐기대회’에서 백기완 후보는 민주대연립 시도가 좌절되었음을 고백하고 후보를 사퇴하였다. 이로써 군정종식과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외치며 대통령선거투쟁을 수행하였던 독자후보론자들의 실천과정은 일단 막을 내렸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대협' (돌베개 1991), 44~45쪽)


사건사전번호 : H-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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