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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폐지·고추전량수매 농민대회(여의도 농민시위, 여의도 농민죽창시위)

제목(Title) : 수세폐지·고추전량수매 농민대회(여의도 농민시위, 여의도 농민죽창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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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일 : 19890213


사건내용 :
<사건내용>
1989.2.13 전국 99개 군 농민 1만5천여명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수세폐지 및 고추전량수매쟁취 전국대회>를 갖고 격렬한 시위를 벌인 사건. 87년 일해 고추값 폭락과 수세제도의 불합리성 및 농지개량조합의 비민주적 운영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싸움이 전국 각지에서 400여 차례나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점이 시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고추값이 나날이 폭락하자, 농민들은 국회 개원시기에 맞춰 자신들의 절박한 생존문제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한편, 4당 대표와 대책을 토론하기 위해 집회를 끝마치고 국회의사당 쪽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분노한 농민들은 만장이나 깃발을 달기 위해 가져온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어 이에 대항하면서 KBS·정부업무수행 차량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다. 농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일시에 표출, 폭발적인 투쟁이 전개되자 정부는 농민운동 지도자 및 전민련 의장·전대협 의장 등 민족민주운동세력에 대한 검거령을 내렸다. 흔히 <죽창시위>로 불리는 여의도 농민시위는 60·70년대 개발독재의 그늘 아래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고, 80년대 들어서는 농축산물 수입개방조치에 의해 벼랑으로 내몰린 농민현실의 필연적 결과였다. 또한 이 투쟁은 가톨릭농민회·기독교농민회 등 기존의 전국적 농민운동조직과 80년대 하반기부터 광범위하게 결성되기 시작한 자주적 농민대중조직의 일부가 연합, 3.1 <전국농민운동연합>을 발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사사전편찬회 편, ??한국근현대사사전', 가람기획, 1990, 524쪽)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농민과 서총련 소속 대학생 및 재야단체 회원들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수세폐지 및 고추전량수매 전국농민대회’를 가진 뒤 국회의사당 앞 대로변과 여의도 광장 일대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과격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충돌로 경찰관과 농민, 행인 등 1백여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시위농민들로부터 죽창 20여개를 압수하고 28명을 연행해 조사 중이다. (조선일보 1989.2.14)
검찰과 경찰은 13일의 서울 여의도 농민 폭력시위 배후조종자와 현장지휘자 및 폭력난동자를 가려내 국법질서 수호와 집단폭력근절 차원에서 엄벌할 방침이다. 검찰은 전국수세폐지대회 부위원장 尹치영, 전국고추생산자지역대책위원장 李유린(경북봉화농민회장) 전민련 공동의장 李英順 전대협 임시의장 任鍾晳(21·한양대 무기재료4)등 농민대회를 주도한 농민 및 재야단체 대표 등 관계자를 금명간 소환조사해 배후조종혐의가 드러나면 모두 구속할 방침이다. (조선일보 1989.2.15)


사건사전번호 : H-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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