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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명지대생) 폭행치사사건

제목(Title) : 강경대(명지대생) 폭행치사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910426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71년 2월 서울 출생
1990년 2월 서울 휘문고등학교 졸업
1991년 3월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
3월 22일 총학생회 진군식 시위 도중 학내 진입한 전경의 직격 최루탄에 의해 안면 부상
4월 26일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 및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 중 백골단의 쇠파이프 난타로 인해 심장막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
5월 14일 장례식이 경찰에 의해 저지됨
5월 20일 장례를 치른 후 망월동에 잠듦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사건내용>
구속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교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명지대생이 전경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했다. 26일 오후 5시 10분쯤 서울 명지대 정문밖 50m 쯤 떨어진 곳에서 동료 학생 300여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이 대학 강경대군(20, 경제학과 1년)이 학생들을 교문 안으로 밀어붙이던 경찰에 붙잡혀 쇠파이프 등에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 학생들은 강군이 다른 시위 학생들이 학교로 밀려간 뒤 뒤쳐져 있다가 정문 옆 오른쪽의 허물어진 담장을 넘으려다 경찰에 붙잡혔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또 경찰이 강군을 쇠파이프 등으로 집단 구타하고 5~10m쯤 끌고 가다 학생 1백여명이 화염병을 던지며 몰려가자 강군을 놓아두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강군은 달려 온 학생들에 의해 본관 2층 학교 보건소로 옮겨졌으나 상태가 위독해 인근 성가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강군을 검진한 성가병원 박동국 외과과장은 숨진 강군의 오른쪽 눈썹 위가 둔기로 맞은 듯 사선 방향으로 7cm가량 찢어졌고 두개골 일부가 함몰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오후 6시쯤 강군의 시체를 연세대 부속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다. 강군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명지대생과 서총련 소속 학생 등 2천여명이 영안실주변과 연세대 정문 등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조선일보 1991.4.27)
27일, 서울 연세대에서 규탄대회가 열린 것을 비롯, 부산, 광주 등 전국 20개 대학에서 강군의 폭행치사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조선일보 1991.4.28)
강군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은 경찰로부터 27일 신병을 넘겨받은 서울시경 4기동대 94중대 3소대 소속 이형용 일경(22), 김영순 상경(22), 장광규 상경(22), 임천순 상경(22) 등 전경 4명 외에 같은 소대 소속 김형두 상경이 강군 구타에 가담한 사실을 밝혀내고 28일 오후 이일경과 김상경 등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구속을 집행했다. (조선일보 1991.4.29)


사건사전번호 : H-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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