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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제목(Title) :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 경기노련


Subject :


결성일 : 1988-12-28


단체성격 : 공개 / 임의단체


주요활동지역 : 경기남부 지역


주요인물 : 임석순(초대 위원장, 경원제지 위원장)


조직체계 : 경기노련은 독립성이 강한 3개의 지구를 포괄하고 있는데다가 추진세력들 사이에 민주노조의 실질적인 역량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결성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다. 주요한 쟁점은 지구협의회의 독자성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이며, 경기노련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조직의 성격을 연합체로 할 것인가, 협의체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논란 끝에 결국 현실적인 역량을 고려하여 ‘각 지구의 독자적인 활동과 운영을 인정하되 전 지역적 연대를 강화


결성과정 : 경기남부지역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많은 민주노조들이 결성되었지만, 여타 지역에 비해 적극적인 연대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투쟁이 활발했던 안양지구의 경우 금성전선, 대우중공업, 만도기계, 오뚜기식품, 농심, 삼풍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파업투쟁이 전개되었지만 8월 중순 이후 집요해진 자본과 권력의 탄압에 의해 안정적인 민주노조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특히 수원지구의 경우에는 삼성재벌 산하 대기업들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평택의 금성사, 한일합섬 등 극히 소수의 대공장에서만 투쟁이 전개되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 결성투쟁이 줄기차게 이어져 이들을 중심으로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들은 각 지구별 위원장단 모임, 간부교류를 확대해 공동 체육대회, 문화행사와 같은 대중적 연대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88년에 접어들어 서울에서 진행된 맥스테크사 위장폐업 철회투쟁은 경기지역 노동자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지원방문, 집회참가와 같은 방법으로 연대투쟁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보적 연대활동의 성과가 가시화된 것은 1988년 임투를 앞두고 조직된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 임금인상 대책위원회(이하 ‘임대위’)’였다. 1988년 1월 11일에 결성된 ‘임대위’는 안양지구의 경원제지, 수원지구의 풍원산업, 안산지구의 삼양금속, 덕부진흥 등을 ‘간사 노조’로 선출하고 주변 노동조합과 지역내 노동운동단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임투를 조직적으로 수행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 ‘임대위’는 임투를 앞둔 준비기간 동안 교육 및 홍보활동을 통해 각 노동조합을 어느 정도 지원했지만, 정작 임금인상투쟁에 돌입하자 조직적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당면한 문제들을 임시방편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안양지구에서는 1988년 임투를 통해 ‘노동자 문화제’, ‘택시총파업 지지대회’, ‘노조탄압 규탄대회’ 등 공동집회를 개최했으며, ‘안양, 군포, 의왕지구 노조탄압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안산지구에서는 ‘동양고압고무 구사대 폭력난동’, ‘삼양금속 장기파업’등을 지원하면서 연대역량을 모아나가 삼양금속이 승리함으로써 연대의 성과를 확실히 확보하기 시작했다. 수원지구에서도 아주파이프와 천지산업에 대한 지원투쟁이 결실을 보아 승리를 거두면서 연대의식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각 지구별 연대투쟁의 성과는 1988년 7월 ‘안양전자 공장이전 철회투쟁’을 계기로 경기남부지역 차원으로 모아졌다. 안양전자는 조합원60~70명 규모의 작은 사업장에 불과했지만 자본가의 노골적 탄압책동인 위장이전, 폐업에 맞서 지역내 노동자들의 지원과 연대투쟁을 이끌어내 마침내 승리를 거둠으로써 경기남부지역 연대활동을 활성화시키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안양전자 이전 반대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3개지구를 포괄하는 경기남부지역 차원의 연대조직 건설을 결의하고 각 지구마다 ‘경기노련 추진위원회’를 조직함으로써 경기노련 건설을 위한 활동이 본궤도에 올랐다.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 추진위원회(이하 ‘경기노련 추진위’는 1988년 7월 22일 안양지구에서 먼저 결성되었고, 8월 12에는 안산지구, 11월 24일에는 수원지구에서 결성됨으로써 1988년 말에 각 지구별로 경기노련 건설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였다. 각 지구별 ‘경기노련 추진위’는 하반기 동안 단위사업장의 투쟁을 공동으로 지원하면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해 나갔고, 10월 들어 ‘경기노협 소식지’를 발행하였으며, 공동교육, 일상활동 지원사업을 전개하였다.

1988년 노동법 개정투쟁은 경기노련 건설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즉 전국노동자 등반대회와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에 경기남부지역 노동자들이 하나의 지역단위로 참가하면서 결집력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특히 전국노동자대회에는 800여 명이나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하반기 사업을 치른 후 12월 28일 32개 노조 78명의 대의원들이 모여서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을 창립하였다. 각 지구별 참가현황을 보면 안양지구가 14개 노조 3,000여 명, 수원지구에는 8개 노조 3,000여 명, 그리고 안산지구 10개 노조 약 2,000여 명 등 총32개 노조 8,000여 명이 참여했다. (??전노협 백서??, 1권 3장 1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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