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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건설을위한정치연합

제목(Title) : 진보정당건설을위한정치연합 : 진보정치연합


Subject :


결성일 : 1988-09-14


단체성격 : 공개 / ?


주요인물 : 공동대표(최병욱, 제정구(諸廷坵), 이강철(李康哲), 정태윤(鄭泰允), 사무처장(유인태), 사무차장(염만숙), 정책기획실장(이경재), 대변인(김부겸)


조직체계 : 공동대표-사무처-정책기획실-대변인-중앙상임집행위원회


결성과정 : 진보정치연합은 4.26 총선 직전 신당추진그룹에 의해 9월 14일 결성됐다. 당시 신당추진그룹은 상호 입장 차이로 두개의 당을 만들었다. 한겨레민주당과 민중의 당이 그것이다. 한겨레민주당은 반민정당애국민주전선을 건설해 나간다는 기치 하에 평민, 민주, 한겨레 등 3당 통합을 꾀하는 한편, 한겨레민주당과 민중의당의 양당 통합도 모색하였다. 민중의 당은 제도야당이 민중의 대변자일 수 없다는 인식 하에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민족, 민주운동세력의 일각에 의해 창당됐다.

평민, 민주, 한겨레민주당 간의 3당통합 노력은 기성정치인들의 신당에 대한 의혹과 불신으로 무위로 돌아갔고, 한겨레민주당과 민중의당 간의 통합노력도 현실인식, 입장의 차이로 무산되었다. 신당추진그룹은 분열된 채 4.26 총선을 맞이하였고, 그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양당은 4.26 총선 패배에 대한 평가작업에 들어갔고, 이 평가를 기초로 통합논의가 재개됐다. 4.26 총선 패배에 대한 평가는 양당 사이에서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재정이나 인물 등에 대한 치밀한 검토 없이 총선에 임한 점 -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고 이념적으로 비슷한 양당이 분열된 채 총선에 임한 점 - 이런 요인들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으로 다가서지 못한 점 등이다.

이러한 내부평가, 반성과 더불어 민족, 민주운동권 일각으로부터 통합요구가 나오면서 양당간의 통합논의는 시작되었다. 통합논의는 88년 5월부터 비공식적으로 시작되었는데, 6월 말 한겨레 당무대책 회의에서 통합을 추진키로 하고 통합대책위원을 선임함으로서 통합논의는 공식화됐다.

이후 올림픽 때까지는 통합을 이룬다는 원칙에 합의한 후 8월 18일, 9월 6일 진보정당 결성을 위한 1,2차 공청회를 개최하고 9월 14일 통합됐다. 진보정치연합은 이 날 대표위원으로 제정구(상임대표위원), 최병욱, 정태윤, 이강철씨를 선출하고 사무처장에 유인태, 정책기획실장에 이경재, 사무차장에 염만숙, 대변인에 김부겸씨를 선출했다. 진보정치연합은 통합성명서를 통해 “한겨레민주당과 민중정당 재건추진위원회는 그동안 분열과 대립으로 인하여 저질렀던 잘못을 뼈아프게 반성하면서 앞으로 ‘진보정치연합’을 밑거름으로 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민주인사들을 결집시켜 진정으로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 진보적 대중정당을 창당할 것임”을 밝혔다. (??말??호, 1988.11, pp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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