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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봄, 박종철과 김세진의 마지막 만남과 대화

제목(Title) : 86년 봄, 박종철과 김세진의 마지막 만남과 대화


에피소드내용 : - 1986년 4월 청계피복노조와 노학연대 시위 때 체포된 철이(박종철)는 서울 성동구치소에서 청계노조 위원장 황만호와 ‘통방’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 - 86년 4월말 철이는 한 수감자를 통해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재호의 분신 소식을 들었다. 그날 아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아들이 김세진을 만난 것은 85년 5월 관악경찰서에서 구류를 살 때였다. 두 학생은 유치장에서 통성명한 뒤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숨죽인 채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이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86년 봄이었다. 신림동의 어느 서점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안부를 주고받았다. 헤어질 때 김세진이 망설이듯 말했다.
“종철아, 앞으로 우리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대 학생회장에 선출된 김세진의 당선소감이 대자보로 붙었다. 철이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학생회장이 되면 바빠진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4월28일, 김세진은 신림사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서울대 85학번 학생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김세진과 이재호는 3층 건물 옥상 위에서 구호를 선창했다. 두 사람은 경찰들을 향해 다가오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것이 두 청년의 죽음을 불렀다. 이재호는 옥상에서 1층으로 떨어져 내렸고, 김세진은 시너를 몸에 붓고 옥상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쓰러졌다. 김세진은 5월3일, 이재호는 5월26일 끝내 눈을 감았다.
김세진은 4월26일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다짐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해방된 조국의 땅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임을 가슴 뿌듯하게 느낄 때가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투쟁 속에서 그날을 앞당길 것입니다.”
철이는 한동안 넋을 잃은 듯 지내다 5월12일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5월8일 어버이날 쓴 이 편지는 구치소에서 온 편지 중 우리 부부가 가장 반갑게 읽은 것이다.
“여기 있는 동안에 지난 일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돌이켜보고 반성도 하여 나가서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막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어버이날을 올해는 이렇게 보냈군요. 죄송합니다. 어버이날 하루만을 치장하는 겉치레 효성보다는 항상 간직할 수 있는 효성이 더 좋겠지요.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제보자 : 박정기


관련일시 : 1986-03-00


에피소드사전번호 : E-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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