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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제목(Title) :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791009


사건종료일 : 19801223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76.2.29 :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하 남민전) 결성
1979.10.9 : 구차춘 내무부 장관, 남민전 사건 1차 발표
1979.10.16 : 구자춘 내무부 장관, 남민전 사건 2차 발표
1979.11.13 : 치안본부, 남민전 사건 3차 발표(이상 편집부 엮음, ??공안사건기록: 1964~1986', 세계, 1986, pp.103-104)
1980.2.4 : 남민전 1차 공판(동아일보 1980.2.2)
1980.2.7 : 남민전 사건 관련, 박현채(징역2년, 집행유예 3년) 등 항소심 선고(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햇불' 제4권, 1997, p31)
1980.4.14 : 서울형사지법, 이재문 등 8명 사형구형(동아일보 1980.4.14)
1980.5.2 : 서울형사지법, 이재문 등 4명 사형선고(동아일보 1980.5.2)
1980.9.5 : 서울고법, 남민전 항소심서 이재문, 신향식 사형선고(동아일보 1980.9.5)
1980.12.23 : 대법원 남민전 상고심 이재문, 신향식 사형확정(동아일보 1980.12.24)

<사건배경>
<남민전>은 1976년 2월 29일, 당시 반유신저항운동의 통일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하저항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이재문, 김병권, 신향식, 안재구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조유식, ?이재문과 남민전?, ??말' 1992.8; 신준영, ?남민전 중앙위원 안재구 교수?, ??말' 1991.3; 편집부 엮음, p116). 즉 <남민전>의 결성은 종속적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제기된 산업화의 ‘심화’기의 경제적 모순과 유신체제의 성립과 강화를 둘러싼 정치적 모순을 구조적 배경요인으로 하고, 이념적 급진화를 경험한 신혁명운동인자가 배출되었으나 독자적으로 혁명조직을 형성 운영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조건 속에서 성립하였다(조희연,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울, 1993, p180). 이들은 당시 ‘현장투신론’과 ‘전위조직건설론’이라는 이분법을 지양하고, 노동자?농민 스스로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선전?선동해야한다고 생각했으며, 기존 대중조직이 있는 경우에는 올바른 변혁운동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기존 대중조직이 없는 계층?계급에게는 새로운 대중조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다. 이러한 지향을 가지고 <크리스찬 아카데미>, <가톨릭농민회>, <농업신용협동조합> 등의 성원 중에서 선진분자를 조직원으로 가입시켜 활동하게 했다(최현숙, [이 사람에게 듣는다: 남민전의 안재구], ??우리사상' 창간호, 1991, pp.336-337). 그리고 반파시즘 대중운동이 학생운동을 선두로 하여 일정하게 발전해 감에 따라 그것을 조직적으로 반영하고 지도하려고 하는 외곽방계 부문조직을 분화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검거를 맞게 되었다(조희연, p343).
<사건내용>
검찰은 1980년 4월 14일, 논고를 통해 “이 사건은 북한공산집단의 대남전략에 따른 인민민주주의혁명을 기도하면서 그들의 전략을 교과서적 지침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반국가 변란기도사건이며 북한공산집단의 남한 혁명단체로서의 정통성을 계승한 비밀지하당 사건일뿐 아니라 북한공산집단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간첩단사건”이라고 규정했다(동아일보, 1980.4.14). 이외 내무부 및 치안본부 발표문은 편집부 엮음, ??공안사건기록: 1964~1986', 세계, 1986, pp103-104, 이재문 공소장은 대검찰청 공안부편, ??좌익사건실록' 제12권; 편집부 엮음, ??공안사건기록: 1964~1986', 세계, 1986, pp.129-211 참조


사건사전번호 : H-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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