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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열(서울대생) 사망사건

제목(Title) : 우수열(서울대생) 사망사건 : 의문사진상규명위 진정 제11호 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50630


사건내용 : <사건경과>
-85.06.30, 사망
-2001. 11.24,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건 진정 기각 결정

<진정내용>
■ 우수열(禹壽烈) 인적사항
-생년월일; 1962년 2월1일 생
-직업; 학생(서울대 국문과 4학년)
-사망일; 1985년 6월30일(당시 만 23세)
■ 진정인 우학수(우수열의 형)의 진정 취지
우학수는 “우수열은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직?간접적으로 학생운동에 관여하였는데, 사망 전날인 1985년 6월29일 새벽 무렵 당시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및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 투쟁위원회’(’삼민투‘) 관련 수배자 검거를 위하여 경찰에 의하여 서울시내 주요 7개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외국어대, 동국대)에 대한 수색, 검거작전이 실시되었고 서울대에서는 같은 날 오전 11시경 2차로 경찰이 투입되어 수색 검거작전이 있었던 바, 우수열이 그때 공안기관으로부터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망하자 남영동 공안분실 근처의 철도변에 유기되었을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사망경위 사실
-우수열은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법시험을 계속 준비해왔으며, 친구이던 윤0숙에게 고시공부의 어려움과 불합격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우수열의 형수인 김0희는 우수열이 사망한 후 책상서랍에서 사법시험 응시표 2장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우수열은 재학중 사법시험을 계속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우수열은 1985년 6월26일 무렵부터 잠을 자지 못하고 몹시 불안해 하다가 같은 달 6월 28일 상기되고 흥분된 상태에서 집을 나갔으며, 같은 달 29일 새벽 무렵에는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소재 큰누나 우애0의 집에 들러 “시골에 있는 할머니에게 가겠다며 차비를 달라”고 말하였고, 이에 우애0가 “학교는 어떻게 하고 시골에 가느냐”고 묻자, “학교고 뭐고 다 싫다”고 대답하였다.
-우애0는 우수열에게 “아침에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가야 하니 한숨 자라”고 하였고, 우수열은 그날 오전 8시경 기상하였는데 우애0가 확인해보니 덮고 있던 이불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고, 몸을 굉장히 떨면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면서 아침밥을 잘 먹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상태를 보였고, 그날 아침에 우애0로부터 부탁한 돈을 받지도 아니한 채 우애0의 집을 나갔다.
-우수열은 1985년 6월29일 점심 무렵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연구실에 있던 학과 선배 한0구를 찾아가 돈을 빌리려고 하였으나, 위 한0구가 가진 돈이 없어 돈을 빌리지 못하고 서로 헤어졌다.
-우수열은 같은 달 30일 오전 8시 36분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78번지 소재 철로 좌측 레일 위에서 머리를 베고 누워 있다가 전동차에 치어 두개골 파열로 사망하였는바, 우수열이 위 한0구와 헤어진 후부터 사망한 때까지의 행적은 밝힐 수 없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최종 판단(2001년 11월24일)
-위에 근거하여 우수열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사망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우수열은 재학 중 학생운동 참여 사실이 없고, 6월29일 경찰의 서울대 학생회관 수색시 연행학생이 없었던 점, 가정환경과 고시공부 문제로 개인적 고민이 많았던 점등이 공권력 행사에 의한 사망이라 보기 어렵다.(이상,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보고서 : 1차(2000.10~2002.10) Ⅳ』, 2003년, 134~137쪽 재구성.)


사건사전번호 : H-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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