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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군범국민추도대회 (2'7대회)

제목(Title) : 박종철군범국민추도대회 (2'7대회)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70207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7.1.14 박종철, 치안본부에 연행돼 수사 중 고문으로 숨짐. / 1987.2.7 ‘고 박종철군 국민추도회’개최 / 1987.3.3 박종철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 / 1987.5.18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진상폭로. / 1987.6월 민주대항쟁

<사건내용>
검찰과 경찰은 2일 오는 7일 서울명동성당에서 열릴 예정인 「박종철군범국민추도대회」를 불법집회로 간주, 집회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등 강력한 사법적 대응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추도대회는 순수한 종교적 차원의 집회가 아닌 야권인사 및 재야단체가 주도하는 정치적 불법집회』라며 『당국은 이번 추도대회가 사회적으로 현저히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농후한 집회라는 점을 중시, 대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은 2일 「박종철군 추도대회」와 관련 재야단체들의 사전움직임을 봉쇄키 위해 압수수색에 나서기로 했다. (조선일보 1987.2.3)
「박종철군 추도대회」준비위원회는 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 회관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7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서 개최할 추도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 전원이 성당 밖으로 나가 침묵행진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위 신문 1987.2.5)
“온 국민의 비상한 관심 속에 7일 오후 2시 전국에서 일제히 열리려던 서울대생 박종철군 추도대회가 큰 불상사없이 일단 종료됐습니다. 이날 대회에 처음부터 눈길이 쏠릴 것은 무엇보다도 종래의 신민당개헌대회 같은 정치성 집회와는 달리, 가톨릭 등 종교계가 앞장선 범국민적 집회라는 점에 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추도회 당일 앞서 있은 서울대 교수 1백여명의 의사표시나 덕성여대 교수들의 애도표시 등도 겉으로 드러난 시민들의 호응 이외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정부도 박군의 고문치사에 대해선 잘못을 시인하고 관련자 구속과 정치적 인책 외에 여러 기구의 설치 등 제도적 시정을 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이상, 추도회에 이야기 한마디 거들고, 박수치고 경적을 울리는 것이 큰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대담성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위 신문 1989.2.8)


사건사전번호 : H-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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