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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섭(광무택시 노동자) 구사대 폭행사망사건

제목(Title) : 문용섭(광무택시 노동자) 구사대 폭행사망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80609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86년 10월 서울 동대문구 망우리 광무택시 입사
1988년 6월 9일 구사대의 폭행으로 운명
<삶과 죽음> (http://ugh.or.kr/nodo/nodong2.html#문용섭)
문용섭 동지는 가난하게 살아 왔으면서도 의롭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회사 관리자들에게 바른 말을 잘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동료들에게는 부담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 회사 과장들이 힘없는 기사들에게 각종 구실로 돈을 뜯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이 사실을 낱낱이 자신의 수첩에 기록하여 폭로함으로써 회사의 비리를 바로잡겠다고 별러 왔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문용섭 동지는 일을 나가지 않고, 1,000원을 입금으로 잡아놓고 노용운과장에게 '노부장과 회사의 비리를 밝힐 수 있게 2주일간의 휴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편 이날 회사 부장과 동지는 회사 비리와 문 동지를 해고시킨다는 소문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회사측 사람의 공격에 의해 뒤로 쓰러지면서 포장마차 문밖 보도로 쓰러져 뒷머리를 보도에 부딪쳐 실신, 병원으로 옮겼으나 두 개골 골절상으로 운명하였다

<사건내용>
1988년 6월 6일 서울 동대문구 망우동 소재 광무택시(사장 노명재) 운전기사 문용섭 동지가 화사측의 구사대인 신세일에게 맞아 동부 제일병원에 입원 중 6월 9일 숨졌다. 광무택시는 사장 노명재와 조카들인 노용복 관리부장, 노용운 관리과장 등이 함께 운영하는 전형적인 족벌체제이다. 관리부장 노용복은 때로 문용섭 동지와 같이 당당하게 따지고 드는 기사들을 힘으로 누르기 위해 관리과장 노용운의 소개로 정경, 신세일, 김문기 등을 입사시켜 의도적으로 회사파 기사로 키워왔다. 그리하여 1988년 5월 7일 서울지역 택시총파업 당시에는 정경, 신세일 등 입사 2개월도 안된 신입 기사들이 회사 업무용 차량을 동원 (일반 기사들은 빌려 타기가 대단히 어렵다)하여 파업에 동참하자던 고참 운전기사들에게 ‘망우리 뒷산에 가서 이야기 좀 하자’며 차에 탈 것을 종용하는 방법으로 은근한 위협을 가하였다. 또한, ‘노부장에게 대드는 놈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협박을 가하였다. 이와 같이 깡패같은 회사파 기사를 구사대로 키워 기사들을 꼼짝 못하게 억압해 왔다. 문용섭 동지는 이 회사 과장들이 힘없는 기사들에게 각종 구실로 돈을 뜯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이 사실을 낱낱이 자신의 수첩에 기록하여 폭로함으로써 회사의 비리를 바로잡겠다고 별러 왔다. 사건이 발생한 6월 6일 오후 근무조였던 문용섭 동지는 일을 나가지 않고, 1,000원을 입금으로 잡아놓고 노용운 과장에게 '노부장과 회사의 비리를 밝힐 수 있게 2주일간의 휴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편 이날 포장마차에서 회사 부장과 문용섭 동지는 회사 비리와 문 동지를 해고시킨다는 소문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노부장이 포장마차에서 나간 뒤 같이 있던 정경과 신세일이 문 동지에게 ‘자꾸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면 수범업체가 되지 않는다’면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이 때 포장마차 안에는 신세일, 정경, 정승철(기사), 포장마차 아주머니 2명이 있었다고 한다. 말다툼이 시작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신세일이 담배로 문 동지의 얼굴(코옆)을 지졌다. 이에 문 동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세일에게 접근하자 신세일이 가격을 하여 문 동지가 포장마차의 문을 꽝 소리가 나게 붙잡았다가 뒤로 쓰러지면서 포장마차 문 밖 보도로 쓰러져 뒷머리를 보도에 부딪혀 실신하였다. 문 동지가 쓰러지자 신세일, 전경, 정승철 등은 문 동지를 정승철이 타고 온 차에다 싣고서 문 동지의 가방과 함께 망우리 소재 제세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동부제일병원으로 향하였다. 또한 정경과 신세일은 동부제일병원에 처음 데리고 갔을 때 술을 마시다 갑자기 그 자리에서 쓰러진 것처럼 위증을 하기도 하였으며 이에 의사는 단순히 뇌일혈로 생각하였으나, 수술결과 두개골 골절상이었다. 한편 경찰은 사건을 축소, 단순한 개인의 폭력에 의한 사망으로 협소화시키고 그마저 지연시킴으로써 진상규명과는 반대의 길을 갔으며, 회사측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책임회피에만 급급하였고, 가족들은 ‘이 사건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에까지 시달려야 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자료집 : 살아서 만나리라', 1997, 75~76쪽)


사건사전번호 : H-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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