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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방북사건

제목(Title) : 황석영 방북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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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일 : 19890320


사건내용 :
<사건내용>
작가 황석영씨는 30일 공개된 성명에서 ‘남한민중의 통일에 대한 열망에 순종하여 북을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동경의 학사회관에서 황씨의 일본인 친지 이토(일본 중앙대 교수) 다카사키(번역가) 양씨가 발표한 황씨의 ‘북을 방문하는 나의 입장에 대하여’는 바로 지금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베트남에서는 예언적으로 한반도에서는 현실적으로 종지부를 찍고 있는 중이라고 전제하고 가까운 장래에 기필코 외세를 우리 땅에서 몰아내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구체적인 현실을 우리 당대에 보고야 말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토씨는 황씨로부터 내가 북한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있으면 이 글을 공개해 달라고 부탁받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1989.3.31)
북한에 체류중인 작가 황석영씨는 8일 자신이 지난달 20일 평양에 도착했으며 가장 큰 입북목적은 분단의 비극을 가시고 문예부문에서의 남북교류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9일 내외통신에 따르면 황씨는 이날 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이와 같이 밝히고 북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확인, 그것을 정확히 남의 민중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고향을 찾아보기 위해서 평양을 방문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방북 일정을 길게 잡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 신문 1989.4.11)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약칭 민예총)의 대변인으로 있던 작가 황석영은 1989.2.28 일본으로 넘어가 정경모를 통해 방북을 요청, 아스에 로스케의 주선으로 3.20 민예총 대표 자격으로 북경을 경유,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문목사의 방북과 때를 맞춰 황석영을 민예총 대표로 북한에 보내면 문목사의 방북성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북한의 치밀한 공작에 따라 황씨의 방북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황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중지한 뒤 귀국하는 대로 구속시키기로 했다. 황석영은 이와는 달리 이종찬 민정당 의원과 안기부 담당자의 사전허락을 받고 방북했다고 주장, 황씨 방북의 배경을 둘러싸고 정치권에도 적잖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이를 우리사회의 내부 교란을 노린 공작의 일환으로 보고 황씨가 귀국하는 대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석영은 북한 체류 30여 일 동안 문목사와 함께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을 비롯, 홍명희, 박태원씨 등의 가족을 만나 월북작가들의 근황을 알아보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황씨는 4.27 북한을 떠난 뒤, 일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방북 경위에 대해 “7·7 성명 이후의 새로운 움직임에 자극받았고 그 전부터 북한을 한 번 취재 방문하고 싶었다”며 “출판기념회 일로 일본에 와서 친지의 도움으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의 초청장을 받아 평양에 가게 됐다”고 밝혔다. 황씨는 또 “귀국을 일단 보류하고 북한방문기를 완성하겠다”며 “이종찬 사무총장, 안기부 관계자들에게 분명히 방문의사를 타진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황석영은 일본에서의 비자 기간이 끝남에 따라 5.12 서독으로 거처를 옮겨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서베를린, 함부르크 등에서 주로 머물렀다가 약 4년만인 1993.4.27 귀국했으나 안기부에 의해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안기부는 그에 대한 1차 구속기간이 만료된 5.6 법원으로부터 구속기간 연장 허가를 받기에 앞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황석영이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의 지침에 따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조국은 하나다>, ??한국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3', (녹두 1993), 231~232쪽)


사건사전번호 : H-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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