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기
최완용(산재노동자) 분신사망사건

제목(Title) : 최완용(산재노동자) 분신사망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90409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64년 11월 2일 충남 천원 출생
1983년 인천에서 공장생활
1987년 산업재활원 방문, 환자들을 위로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재해자들과 삶을 같이함
1989년 계양구 박촌동 소재 흥업사에서 손가락 4개가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함
1989년 4월 9일 부평 철마산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열망하며 분신

<사건내용>
최완용 동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의 어린 나이에 정든 부모님 곁을 떠나 저임금과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속에서 일을 하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일이면 산업재활원을 방문하여 고통당하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회사에서는 남달리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다. 그러던 중 1989년 3월 1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안전장치도 없는 프레스에서 작업하다 오른손이 잘렸다. 동지는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병원 산업재활원에서 재활 기술을 배우기를 희망하였으나 회사와 병원의 거부로 그것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내가 죽으면 중앙병원 영안실에 안치해 달라'며, 산재 노동자의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온몸에 불을 붙여 산화해 갔다. 동지는 산재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영리에만 치우쳐 노동자의 생명과 생존권을 말살하는 자본가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숨진 것이다.
흥업사 대표 조수평은 기업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회사직원 4명을 동원하여 ‘회사에 잘못이 없다’는 내용의 각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협박과 공갈을 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자료집 : 살아서 만나리라', 1997, 84쪽; http://ugh.or.kr/nodo/nodong8.html#최완용)


사건사전번호 : H-1215



연관자료 : 이 자료에는 연관된 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