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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제목(Title) :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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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일 : 19901030


사건내용 :
<사건내용>
안기부 김영수 제1차장은 TV 기자회견을 통해 “사노맹은 종전의 지하혁명세력과는 달리 자신들이 혁명적 사회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엄청나게 큰 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조직”이라고 실체를 규정하고 노동계 2백30여명, 학원계 1천30여명, 종교계 청년운동단체 90여명, 민중당 30명, 청년운동그룹 2백 30여명 등 모두 1천6백여명에 달하는 조직원을 가진 조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사노맹 관련으로 중앙위원 남진현 등 핵심조직원 40여명을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 금품수수, 이적표현물 제작, 소지 및 배포혐의로 구속하고 150여명을 수배하는 등 실로 안기부의 발표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수사발표 중 대표적 민중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박노해씨가 중앙위원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함께 관심을 집중시켰다. 현재(90.11.23)까지 사노맹 관련 구속자는 50여명에 이르고 있어 그 숫자만으로도 사노맹 사건은 조직사건 최대의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 우리 사노맹은 ‘반국가단체’이다. : 사노맹 사건은 구속자 숫자면에서도 놀라움을 주었지만 6공 들어 최초의 ‘반국가단체’ 적용이란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구속자들과 사노맹 조직이 10월 20일 발표된 「특별성명 」1호에서 스스로 반국가단체임을 주장함으로써 안기부의 어마어마한 공격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오히려 누구를 위한 누구의 국가인지가 중요하다며 안기부의 공격에 맞불을 놓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군사독재정권하에서 만들어진 많은 조직사건이 한번도 반국가단체 적용을 그대로 수용한 적이 없었던 것에 비해 사노맹 사건은 조직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임을 공언한 최초의 사건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노맹의 입장표명은 다음과 같은 자신감과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노맹 중앙위원 중 한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박노해씨는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박노해의 최초 고백-이 땅의 자식으로 태어나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노동자로서, 노동자 시인으로서, 노동자 혁명가로서 이 사회속에 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맨 밑바닥 끄트머리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내려가려야 내려갈 수 없고 더 이상 물러서려야 물러 설 곳이 없는 이 사회의 맽 밑바닥 끄트머리! 그러나 우리 노동자는 이 사회의 맨 밑바닥 끄트머리에 기꺼이 서서 우리를 짓누르며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이 자본주의체제의 깊숙한 비밀과 자본계급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는 이제 노동자계급이라는 위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토록 지긋지긋한 밤일도, 그토록 울분이 터지는 관리자의 욕설과 감시도, 불어터진 라면과 기름먼지도 이제는 우리를 좌절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노동자가 딛고 선 이 사회의 맨 밑바닥 끄트머리는 이 부패타락한 자본주의체제를 뒤집어엎은 지렛대의 끝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자리잡은 지금부터 남한사회의 계급전쟁은 시작되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이다. 「교통전쟁」이다. 「물가전쟁」이다. 하는 하고많은 전쟁 중에서 이 땅에 평화와 해방을 가져오는 유일한 전쟁인 「계급전쟁」! 나는 그 전쟁에서 항상 앞장서서 내달려 갈 것이다.” 또한 지하혁명세력이라는 규정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대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정치활동을 하면 우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말인가? 우리의 정치활동을 합법화시키기는커녕 우리의 정치적 신념조차 불법화시키고 엄단하겠다는 당신들이 아닌가? 물은 땅위로 흐르지 못한다면 지하로 흐르면서 저 도도한 강물로, 저 거대한 바다로 그 모습을 철썩이며 드러낸다. 우리도 그러하다.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엄연한 현실 정치세력을 합법이다, 비합법이다라는 문제로 악선동한다 해도 우리 민중은 비웃음으로 대답해 줄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합법의 이름으로 폭력과 착취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합법적인 사상과 합법적인 투쟁방식으로 무엇하나 나아지고 쟁취되는 것이 있단 말인가. 노태우 반동권력 지하에서 비합법적인 지하활동은 이 땅의 혁명세력과 노동자계급의 가장 당당하고 신성한 활동방식이며 해방의 경로이다. 저들은 지하조직이라는 말에서부터 떳떳하지 못하고 음험한 느낌을 줄려고 한다. 저들은 남한 현대사를 질식시켜 온 「적색 공포증」을 발동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계급은 지하조직이라는 말에서 김대중씨나 개량주의적 세력과는 뭔가 다른 긴장감을 느낀다. ········· 이제 이 남한 사회에도 계급전쟁의 총성은 울려 퍼졌다. 이 땅의 사회주의는 이미 첫 번째 승리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우리가 지펴낸 사회주의 혁명의 불꽃은 활활 타올라 이 땅의 모든 착취와 폭력을 집어삼키고야 말 것이다. 우리 남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자신감 있게 외친다. 우리는 이 땅에 자랑스러운 민중권력을 수립할 것이다! 나아가 일체의 억압과 착취를 끝장내고 진정으로 해방된 새 사회를 건설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패의 신화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이렇듯 자본가계급과 독재권력에 대한 전면적 계급전쟁을 선포한 사노맹이 무슨 이유로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이적단체 정도로 형량을 감해 달라고 구걸하겠는가? 오히려 “사노맹이 안기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며 강철조직임을 자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지 12월호 중에서)
실제로 안기부의 사노맹 사건 수사발표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각 개인의 혐의사실 등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조직원으로서 활동했다는 증거는 본인들의 강제진술서뿐이어서 재판과정에서 논란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있다. 또한 사노맹의 조직 보위력을 지탱시켜 주고 있는 자금의 출처 등에 대해서도 안기부는 “88년 12월 결성 준비단계에서 사노맹 지도부는 조직원들에게 보급투쟁에 대해 사노맹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이며 자금부족으로 조직을 잘못 운영하여 와해될 경우 중앙위원은 사형, 조직원은 무기 또는 1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것이라는 방침을 전달했으며 1차 보급투쟁 목표액을 2억7천만원으로 책정하고 조직원 1인당 3백~1천만원씩을 할당했다”고 발표하였으나 진위여부를 전혀 가려내지 못했다. 또한 사노맹의 사회주의 선전·선동 활동을 조직해내는 비밀인쇄소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잡아내지 못하였다. 그 결과 안기부 수사가 진행 중이던 10월 12일에도 사노맹의 「특별성명」은 버젓이 그 모습을 드러내 안기부 관계자들의 속을 태웠던 것이다.
2) 사회주의 이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공세적 투쟁을 늦추지 않았다. : 이제까지 조직사건이 ‘조작시비’로 여론화되었던 것에 반해 사노맹 관련 구속자들과 가족, 사노맹 조직은 결코 조작성을 찾아내는 데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운동권 일부에서는 “도저히 손댈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까지 했는데 여기서도 특유의 대응을 엿볼 수 있다. 먼저 구속자들의 대응을 보자. 구치소 이감이후 구속자들을 면회 간 가족과 변호사 접견을 통해 잔혹한 안기부 밀실에서의 고문 사실이 폭로되어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사노맹 구속자 20명은 11월 9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결행했다. 요구는 ▲ 고문수사 안기부, 보안사 해체 ▲ 정치사상의 자유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철폐 ▲ 사노맹 탄압 중지 ▲ 집필실 개방 ▲ 친지·친구를 포함한 자유로운 면회 허용 등이었다. 이들은 흰 양말에 붉은 실로 “사회주의 만세”라는 글자를 새겨 두르고 “조작이나 인권차원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말고 우리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사상과 신념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 구속자 중 상당수는 재판과정에서 ‘사회주의자 선언’을 하며 사상의 자유 보장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사노맹 조직은 어떤 대응을 했는가? 첫째, 사노맹 지지-안기부 해체 시위자들이 파출소를 타격, 불을 지르고 안기부 정문으로 다가가려다 대학생 8명이 연행된 사건이 일어났다. 민주주의학생연맹 중앙위원장 이수한씨를 비롯한 대학생 8명의 기습 지지시위는 구속자들과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둘째, 11월 10일 민중당대회 창당식장에서 내걸린 붉은 깃발. 붉은 깃발을 들고, 붉은 띠를 이마에 동여매고 붉은 티를 입은 대학생 4명은 “사회주의 만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탄압중지”를 온몸으로 전하였다. 셋째, 11월 11일 노동자대회장에 내려진 플래카드 세 개 등 사노맹 조직은 사회주의 깃발을 공공연히 흔들며 안기부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이렇게 구속자들과 사노맹 조직이 공격을 늦추지 않고 선도투쟁으로 맞서자 안기부는 이성을 잃고 전대협 송갑석 의장을 사노맹 관련으로 조사 중이라고 발표하는가 하면 「새벽바람」에 실린 9대 강령을 인용했다고 부산공업대 총학생회장 입후보자 안형주와 부학생회장 최기호군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또한 「민노투동」을 반국가단체 조항을 적용하여 구속하는 등 살인마적인 광기를 휘둘렀다. 가족들 역시도 조작이나 고문사실을 밝혀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국가보안법 철폐·사상의 자유 보장 등 구속자들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데에 치중하였다. 사노맹 사건은 법정에서도 ‘조작시비’ 보다는 ‘사상의 자유 보장’을 쟁점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기부의 1년여에 걸친 집중적 미행, 도청 등 추적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의 이번 사노맹 사건 발표는 사노맹의 활동을 올스톱 시켜놓지 못했다. 오히려 “안기부의 이번 사노맹 수사발표는 사노맹의 출범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해 준 셈”(「말」지 12월호에서)이 되었다. 안기부의 수사발표 이후 전노협, 전민련, 민중당 등의 “무관” 입장표명과 함께 사노맹의 활동방식·노선 등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땅위에 사회주의적 이념을 갖고 활동하는 세력이 현존하고 있으며 그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니 이 땅에 사회주의 세력이 합법화되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논쟁은 이제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 물음에 답을 주어야만 한다. “당신은 사회주의자를 용인하는가? 그들이 노래하는 그 미래를 함께 열어 가는 데 동참하겠는가?” 노동자 시인에서 노동자 혁명가로 변신하여 우리 국민들 앞에 불쑥 등장한 박노해씨의 결의에 찬 말은 아마도 사노맹 관련으로 구속·수감되어 있는 구속자들의 목소리라 생각하여 대신한다. “설사 나의 연약한 육신이 안기부의 고문대 위에서 비명을 지르다 지르다 처참하게 찢겨져 의문사로 처리될지라도, 나의 목에 굵은 밧줄이 내걸릴지라도, 사회주의 혁명을 향한 나의 신념과 전진의 발걸음은 그 누구도 꺾지 못할 것이다.”
사노맹 관련 구속자 가족들은 안기부에 불법연행되어 간 날부터 면회투쟁을 시작하여야 했다. 20일 동안의 불법구금 기간동안 단 한차례의 면회만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구속자 가족들은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안기부의 앞 항의방문, 면회요구 등을 통해 안기부의 불법연행, 도청 등을 폭로하였고 유인물, 투고를 통해 여론에 도움을 호소하였다. 수사발표 이후에도 구속자 가족들은 고문사실 폭로와 조작사실 폭로, 그리고 구속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뛰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90인권주간 자료집 : 악법철폐와 인권실현', 1990, 67~70쪽)


사건사전번호 : H-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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