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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경대군 노제 및 가두투쟁

제목(Title) : 고 강경대군 노제 및 가두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910518


사건내용 :
<사건내용>
5?18 광주항쟁 11주년인 18일,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지고 서울과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5?18 추모집회와 함께 강군 치사 사건을 규탄하는 가두시위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강군의 장례행렬은 신촌로터리에서 시청앞 노제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 4시간 이상 대치한 끝에 이날 저녁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로 장소를 바꿔 노제를 치른 뒤 사망 23일만에 장지인 광주로 행했다. 강군 장례와 함께 각 지역의 대책회의가 주관하는 광주항쟁 계승과 노정권 퇴진을 위한 국민대회에 따른 집회 또는 시위가 전국 34개 시군에서 있었다.
서울에서는 경찰이 시청 앞 집회를 봉쇄하자 종로, 퇴계로, 명동 일대에서 수만명의 시위대가 도심차도를 점거하고 경찰에 맞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공방전을 벌이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파출소 2곳과 경찰트럭 1대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불탔다.
광주에서는 오전 10시 망월동 묘역에서 추모제에 이어 오후에는 금남로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한 광주항쟁 11주기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들 중 수만명은 전남도청 주변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전노협 소속 일부 사업장 노조는 예정대로 파업을 했으나 대기업 등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정상조업이 이루어졌다. (조선일보 1991.5.19)
(5월) 18일 서울을 떠난 강경대군의 시신은 20일 새벽에야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광주에 도착한 장례행렬은 16시간이나 경찰과 대치했고, 자정을 넘기는 심야의 노제 끝에 강군에게 안식을 주었다. 운구차가 도착한 금남로 3가 일대는 학생들과 시민이 모여들기 시작, 6만여명의 인파로 메워졌으며 일부 학생들은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등 이곳에서도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조선일보 1991.5.20)


사건사전번호 : H-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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