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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인천 삼미기공 노동자) 분신사망사건

제목(Title) : 이진희(인천 삼미기공 노동자) 분신사망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910608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91년 6월 8일 인천 삼미기공에서 임금인상 보고대회 도중 분신
1991년 6월15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삶과 죽음> (http://ugh.or.kr/nodo/nodong6.html#이진희)
(주) 삼미기공은 1991년 4월 11일부터 임금교섭을 시작했으나, 노동조합 위원장이 회사측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타결짓고 보고하였다. 이에 분노한 노동조합 간부로서 집행부의 어용성에 분노하고 있던 홍보부장 이진희 동지는 임금인상 보고대회 도중 분신하여 90% 이상의 화상을 입고 분신 8일만인 15일에 운명하였다. 이와 함께 조합원의 분노를 산 것은 회사측의 태도이다. 회사측은 병원에 찾아 와 가족들에게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회사에 분신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조용히 수습하자"고 회유하면서 동지의 뜻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사건내용>
(6월) 8일 오전 9시 30분쯤 인천시 동구 삼미그룹 계열 (주)삼미 켄하 지하 휴게실에서 이 회사 노조 홍보부장 이진희씨(28)가 임금협상 결렬과 임금인상 폭이 낮게 결정된 데 불만을 품고 분신자살을 기도, 온몸에 중화상을 입어 중태다. (조선일보 1991.6.9)
1991년 6월 8일 오전 9시 30분 경 (주)삼미기공 노동조합 홍보부장 이진희 동지가 임금인상 보고대회 도중 노동조합측의 타결안에 분노하여 분신, 90% 이상의 화상을 입고 분신 8일만인 15일 오전 9시경 한강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4월 11일부터 시작된 임금교섭에서 노동조합 위원장이 회사측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타결짓고 보고를 하자, 노동조합 간부로서 집행부의 어용성에 분노하고 있던 홍보부장 이진희 동지가 결국 분신을 감행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합원의 분노를 산 것은 회사측의 태도이다. 병원에 찾아 와 가족들에게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회사에 분신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조용히 수습하자"고 회유하면서 동지의 뜻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자료집 : 살아서 만나리라', 1997, 129쪽)


사건사전번호 : H-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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