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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 애국동맹) 사건

제목(Title) : 남한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 애국동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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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일 : 19921006


사건내용 :
<사건내용>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조직이라는 ‘남한조선노동당’은 중부 경인 영남 호남 등 4개 지역당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충청남북도와 강원도를 관할하는 중부지역당이 이번에 적발된 것이라고 국가안전기획부는 밝혔다.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은 다시 충북, 충남, 강원도 등 3개 도당과 북한방송을 청취, 지하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는 편집국 등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부지역당의 중심인 강원도당은 핵심 전위조직인 ‘애국동맹’ 밑에 ‘8.28 학생동맹’, ‘5.1 노동동맹’, ‘11.11 농민동맹’ 등 부문별 대오를 두고 노동동맹 산하에 다시 수개의 ‘돌격소조’와 ‘세포’ 조직, 구국의 소리 방송팀 등이 포진하는 식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게 안기부의 설명이다.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은 이선실 등 남파된 대남공작 지도부의 관리하에 이들에게 포섭된 황인오, 최호경, 은재형, 정경수 등 4인으로 구성되는 ‘중앙위원회’가 조직관리 실무를 맡아왔다. 중앙위원회는 91년 7월 강원도 호산해수욕장에서 황 등 4명이 모인 가운데 결성됐으며 황이 책임비서 겸 재야 종교담당, 최가 강원도당 지도책 겸 농촌 군사담당, 은이 충북도당위원장 겸 노동중소기업담당, 정이 충남도당위원장 겸 청년학생담당 등으로 역할분담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1992.10.7)
‘애국동맹’은 구속된 민중당 성남을 사무국장 최호경(35)이 간첩단에 포섭되면서 이전에 노동운동과 야학활동을 할 때 맺은 인맥을 중심으로 조직한 주사파 조직인 ‘95년 위원회’를 흡수, 재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국동맹은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핵심 전위조직으로, 그 밑에 ‘8.28(북한청년절) 청년학생연맹’, ‘5.1(세계노동자의날) 노동동맹’, ‘11.11(전농이 정한 농민의 날) 농민동맹’ 및 언론 문화 예술 산업선교회 등을 담당하는 ‘부문대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위 신문 1992.10.7)
이선실이 조직한 또 다른 간첩망인 ‘민중당 지하지도부’ 손병선(52)은 ‘단선연계 복선포치(조직원 상호간에는 모르게, 상부선과는 각자 따로 연계)’라는 지하당 조직의 기본원칙에 따라 민중당내의 김낙중씨 조직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암약해 왔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손은 90년 2월 진보정당 결성을 추진하던 인사 20여명과 관악산 등반을 갔을 때 이선실을 만나 같은 해 포섭되어 8월 공작금 5백만원을 받고 당원번호 ‘비봉11호’의 노동당원으로 입당했다. 같은 해 9월에는 과천 청계산에서 이선실과 그를 수행한 남파간첩 김동식(30대)으로부터 무전기사용법 등 간첩통신교육을 받고 권총1정, 실탄 12발, 단파라디오 등 간첩장비 일체를 넘겨받았다. 손은 작년 4월 북한의 지령에 따라 부인과 딸에게 자신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방송 수신임무를 맡겼으며, 딸 손민영을 ‘비봉13호’라는 당원번호로 노동당에 입당시켰다. (위 신문 1992.10.7)
안기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라고 명명했던 ‘남한조선노동당’은 황인오씨가 검거된 직후 연행된 중부지역당 중앙위원 최호경씨 등에 따르면 “안기부에 가니까 이미 조직의 ‘그림표’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안기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지 불과 하루 이틀 만에 그 거대한 지하당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사건 관계자들과 주변의 정황 등을 살펴보면 중부지역당이나 1995년위원회 혹은 애국동맹 등이 지하조직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방만하게 운영된 점 쉽게 눈에 띈다. 따라서 안기부가 사전에 이들 조직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안기부가 북한공작원은 한 명도 검거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과 연관된 부분을 그렇게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만약 조직 상층부에 안기부의 프락치가 있었다면 또 몰라도.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할 때 초기에는 ‘남부지역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후 ‘중부지역당’으로 정정했는데, 정작 안기부는 중간 수사발표시 ‘남한 조선노동당’이라고 명명했다. 이 시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는 이 사건 관계자 중에는 어느 누구도 ‘남한 조선노동당’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애국동맹이 중부지역당의 하부조직으로 그 구성원들이 간첩망의 조직원인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95년위원회는 91년 중반부터 인원을 축소해 나가다가 10월경부터 조직을 애국동맹으로 개편했다. 안기부는 “중부지역당이 애국동맹을 산하조직으로 흡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호경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이 사건이 터질 때까지 중부지역당에 대해 알지 못했다. 더욱이 조직원 대다수는 1995년위원회가 애국동맹으로 바뀐 사실조차 몰랐다.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간첩 “북한 권력 서열 22위이며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대남공작 지도책’ 이선실은 10년간 서울 등지에서 잠복하며 거물간첩 임모 등 북한 직파간첩 10여명을 지휘하여 남한 내에 북한 공작지도부를 구축했다고 한다.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선실은 90년 10월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익환 목사가 직접 사인해 준 책이나 장기표씨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주었다는 책을 이선실이 북한으로 돌아간 지 거의 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안기부가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또 장기표씨가 이선실과 단둘이 2년 전에 만나 했던 대화내용을 안기부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장기표씨는 너무 오래되어 자신도 대화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며 “이선화 할머니가 알려주지 않고는 안기부가 알 수 없는 일”로 “이선화 할머니가 안 걸려들 수 없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북한공작원이었다면 “내가 주사파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선화 할머니가 과연 몰랐을까”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손병선씨의 경우 안기부의 발표대로라면 부인과 차녀 손민영 이외에는 아무도 그의 혐의사실을 몰랐고 특정인을 대상으로 활동을 벌인 적도 없다. 그렇다면 김낙중씨나 황인오씨와는 전혀 별개인 ‘선’인 손병선씨를 어떻게 해서 수사하게 되었을까. 더욱이 손병선씨는 “안기부에선 이선화 할머니가 준 수표내역 같은 것까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 등은 기자회견은 통해 “아무런 확인과 검증도 없이 문익환 목사, 임수경씨 등의 방북에 이선실 개입 가능성, 전국연합의 결성배경, 민가협. 전대협 등을 거론해 마치 재야가 간첩의 사주를 받고 있는 것처럼 발표해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며 “국민과 재야, 그리고 야권을 분열시키려는 데 그 저의가 있는 듯하다”고 주장한다. 이울러 이는 “대선 결과에 따라 비상수단을 강구하기 위한 사전조치로서 반공소동을 벌이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안영배,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5대 의혹>, ??월간 말', 1992년, 11월호, 110~116쪽)


사건사전번호 : H-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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