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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레닌주의당

제목(Title) : 마르크스레닌주의당 : ML당


Subject :


결성일 : 1986-06-00


단체성격 : 비공개 / 비합법


주요인물 : 김선태(金善泰, 지도총책/선전지도책, 서울대 독어교육과 4년제적), 박상영(朴相榮, 조직담당, 서울대제적), 지영근(池英根, 조직담당, 서울대제적), 송병춘(宋秉春, 선전담당, 서울대제적), 이철(李哲, 교육담당, 서울대76학번), 송진휴(宋鎭烋, 조직지도책, 중앙대 경영 4년제적), 최형두(崔亨斗, 공장소조책, 서울대제적), 서정호(공장소조책, 중앙대제적), 안준상(공장여소조책, 중앙대81), 배진호(裵晋鎬, 교육지도책, 서울대 독어교육졸), 김인철(구로지역교회책, 서울대82), 김인수(캠퍼스 및 구로야학책, 서울대82), 김암(캠퍼스 및 학습지도책, 서울대제적), 김종식(자료번역책, 서울대82), 이남주(학습지도책, 이대졸), 황찬호(학습지도책, 서울의대), 이철우(선전팀 중간지도책, 서울대제적), 이동훈(교사팀, 신구로국교교사), 신만우(교사팀, 구두닦이)


조직체계 : 민주집중제를 운영원칙으로 하는 ‘협의적 중앙’산하에 구로?영등포지역를 공단지구, 영등포?문래지구, 독산?시흥지구로 세분하여 각 지구의 특성에 맞는 공장소조를 편재했다. 그리고 이 공장소조를 지도하기 위해 조직부를 두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선전부와 교육부 산하에 예비조직원소조, 야학소조, 번역소조, 유인물소조 등 각종 소조가 존재했다.


결성과정 : 1986년 10월 24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대 등 9개 대학교 ‘좌경운동권’ 출신 학생들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전국통일지도부인 <마르크스?레닌주의당>(ML당)을 결성하려 한 사실을 밝혀내고 대학생, 교사, 노동자 101명을 적발, 이중 27명을 검거해 지도총책 김선태 등 1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구성)혐의로 구속하고 박근애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나머지 5명을 훈방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들이 해방 직후의 남로당(남조선노동당)과 같은 조직을 만들려고 했고, 공공연히 친북노선을 표방하고 나아가 “남한혁명은 오직 김일성 주체사상을 기초로 한 공산주의 혁명론에 입각하여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진행과정에서 사건의 허구성이 점점 드러나게 되었는데, 당을 결성하는데 반드시 들어있어야 할 강령?규약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자금을 자신들의 용돈을 털어 썼다는 궁색한 발표를 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ML당 관련자들이 구체적인 외부와의 연계가 없었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조직결성부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해당사항 여기저기에서 공소를 취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소위 <ML>당 하부조직으로 발표된 바 있는 이희영 등 6인이 관련된 소위 ‘지역노동자동맹’결성부분에 대한 공소를 취하했다. 또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던 김선태에 대해서도 ‘지역협의체’, ‘지역노동자동맹’ 등 소위 <ML당>의 주요 상하부조직에 대한 공소를 취하하고 단지 소위 ‘구로지역현장조직’을 결성했다는 사실만 살려 이것만으로 이적단체구성죄를 성립시켰다.

사실상 사건 명칭과 관계없이 그들에게 활동의 중심은 ‘지역현장조직’체계였다. <ML당>과 관련된 그룹에서는 1985년 6월에 벌어진 ‘구로연대투쟁’을 평가하면서 경제적 요구에 기초한 투쟁의 정치적 발전은 ‘다른 방식에 의해’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발전하지 않는 한 정치권력에 원시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가장 주목하고 강조했다. 이 그룹의 활동가들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광범위한 토론을 진행했으며, 1985년 12월에 접어들면서 “현 단계 노동운동은 광주민중항쟁 등에 따른 식민지 지배체제의 일대 위기와 대중투쟁의 점진적인 고양을 맞아 변혁운동에서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지위를 발휘하고 있는 바, 경제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한편 정치투쟁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계기 또한 대중적 자각속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잔존하고 있는 노동조합주의, 경제주의적 경향과 함께 정치주의적 편향마저 일어나면서 근로대중의 자발적 투쟁이 방기되거나 그것만으로 합리화되고, 나아가 대중과는 동떨어진 선진활동가만의 투쟁이 만연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근로대중의 정치적 지도력 형성이라는 과제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위지역현장에 대중적 토대를 갖춘 선진활동가가 중심이 되어 혁명적 이념으로 스스로를 무장단련하며 비합법 조직활동을 통해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조직의 차원에서는 단위지역에서 전국적 전위정당의 전형이자 선진적인 축소판을 만드는 일로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체로 이러한 입장에서 이들은 기존의 서클적이고 느슨한 인간관계를 조속히 청산하고 단일한 지역현장조직으로 통일되어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조직-이론활동 및 노동현장으로의 ‘존재 이전’을 둘러싼 사전작업을 활발하게 벌여 나갔다. 여기서 최초의 지침이 된 문건이 ?지역현장운동론?이라는 팜플렛으로, 이후 6개월 여에 걸친 토론 및 활동의 결과 1986년 6월에는 지역현장조직의 필요성에 의견일치하는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실제적인 조직활동을 벌여가게 된다(민가협?민족민주운동연구소 편, ??80년대 민족민주운동: 10대조직사건??, 아침, 1989, pp.186-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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