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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

제목(Title) : 민중당


Subject :


결성일 : 1990-11-10


해산일 : 1992-02-07


단체성격 : 공개 / 합법


주요인물 : 고문 백기완(白基玩), 상임대표(이우재(李佑宰)), 공동대표위원(김상기(金祥基), 김낙중(金洛中)), 사무총장(이재오(李在五)), 정책위의장(장기표(張琪杓)), 기획조정실장(정태윤(鄭泰允)), 대변인(정문화(鄭文和)), 대외협력위원장(조춘구(趙春九)), 제1노동위원장(김문수), 제2노동위원장(신철영) 정치연수원장(지은희), 농민위원장(임수태), 인권위원장(박용일), 여성위원장(노영희), 조국통일위원장(손병선), 당기관지위원장(유인열), 청년학생위원장(이원주) 교수위원장(오세철), 중앙당기위원장(김결), 정책연구실장(이석원)


조직체계 : 민중당은 상임대표위원을 포함한 3인 공동대표제를 채택했다. 당헌의 계급?계층조직으로는 노동?농민?여성?청년학생?교수위원회 등 5개 부문위원회를 두었다. 5개 핵심조직과 함께 당의 집행?정책 기능을 높이기 위해 사무처?기획조정실?정책위원회 등을 두고 조국통일위원회 등 9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말??, 54호, 1990.12, pp.42~45)


결성과정 : 민중당 추진세력의 핵심은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백기완씨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던 ‘독자후보파’라고 할 수 있다. 이 ‘독자후보파’는 88년 총선에서 ‘민중의 당’으로 이어졌고 그 후에 진보정치연합(89.9) - 새 정당 창당을 위한 임시연락사무소(89.10. 4) - 새 정당 창당을 위한 임시연락사무소(89.10. 4) - 진보정당 준비모임(89.11.10) 형태로 조직을 변화시켜왔다. 재야운동권에서 ‘합법정당추진론’으로 불리는 이런 흐름에 동력이 붙은 계기는 90년 3월의 ‘전민련 제2차 대의원대회’였다. 전민련내의 이부영(전 전민련 상임위원장), 여익구(전 전민련 민주쟁취위원장), 이재오(전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씨 등이 ‘합법정당추진 결성에 대한 안’을 제출했고, 이는 비록 부결되었으나 재야운동권에서 ‘합법정당’에 대한 논의를 전면에 부각시킨 계기가 됐다. 곧이어 이부영씨 등 전민련 정당추진론자와 장기표(민중당 정책위원장) 등 ‘진보정당 준비모임’ 세력 등이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민연추)’로 통합되면서 각계 각층의 정당결성 지지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 민연추는 6월 21일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63명의 창당준비위원회 구성, 위원장:이우재, 김상기 집행위원장 이재오 / 상임고문: 백기완, 권처흥 / 사무처장: 이재오)로 탈바꿈했고, 9~10월경 각 지구당 창당대회를 거쳐 11월 10일 중앙당 창당에 이르렀다. (??말??, 54호, 1990.12, pp.42~45)

진보적 노선을 표방하는 민중당이 90년 11월 10일 창당전당대회를 갖고 정식출범했다. 민중당은 이날 오후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대의원과 당원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전당대회를 열고 상임대표위원에 이우재 창당준비비상상임대표, 대표위원에 김상기교수, 김낙중교수 등을 선출했다. 민중당은 또 이날 백기완씨를 당 고문에 추대했으며, 사무총장에 이재오, 정책위원장에 장기표, 기획조정실장에 정태윤, 대외협력위원장에 조춘구, 대변인에 정문화씨를 각각 임명했다. (?조선일보?, 199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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