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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평우회

제목(Title) : 여성평우회 : The Women for Equality and Peace : 평우회


Subject :


결성일 : 1983-06-18


해산일 : 1987-08-00


단체성격 : 공개 / 합법


주요활동지역 : 서울(경인)


주요인물 : -창립 당시 공동대표 3인; 조형, 지은희, 이미경
-3차 정기총회(86년 4월25일) 신지도부; 심복자(회장)


조직체계 : 평우회의 조직체계는 기본적으로 ‘총회-임원회(3인공동대표)-운영위원회(공동대표3인+각 부서장+ 간사)-집행부서(조직 및 교육부, 조사연구부, 출판홍보부, 사회개발부, 재정부, 문화부)’로 짜여졌다. 평우회는 임원구성에 있어 당시 여성단체로는 최초라 할 수 있는 ‘3인 공동대표제’를 채택했다. 공동대표제는 기존의 여성단체가 1인의 장기집권과 그로 인한 폐해로 더욱 여성대중들과 괴리된 여성단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점에 대한 비판 속에서 ‘평등?평화’를 지향하는 단체로서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갖는 새로운 임원구성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선택되었다. 한편, 평우회는 원활한 사업수행을 위해 교육 및 조직부, 조사연구부, 출판홍보부, 사회개발부, 재정부, 문화부 등 6개의 집행부서를 두었다. 이중 주목할 만한 부서는 사회개발부, 재정부, 문화부다. 사회개발부의 경우 평우회의 기층여성중심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창립때부터 공부방사업을 명시하고 구체적인 사업내용으로는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업의 첫 시작으로 빈민지역의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을 제공하고 지역빈민 주부를 위한 프로그램 실시”를 제시했다. 문화부의 경우 연극, 탈춤 등 문화사업을 통해 여성운동을 실시할 것을 천명하고, 84년 10월 ‘제1회 여성문화큰잔치’를 성황리에 치뤄낸다. 그리고 재정부의 경우 단체의 완전 재정자립을 위해 수익사업으로 티셔츠, 참기름, 여성수첩, 반지 등을 판매했고 계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소기까지 평우회는 완전재정자립을 하였는데, 수입은 회원회비, 사업수익금, 특별모금으로 이루어졌고 이중 회원 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3이었다고 한다.(이상, 강남식, <여성평우회의 활동과 여성운동사적 의의>, 여성평우회창립2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여성평우회 발자취』,2003, 30~31쪽)


결성과정 : 강남식은 평우회의 등장배경을 기존 여성운동의 한계 및 새로운 활동주체의 형성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강남식, <여성평우회의 활동과 여성운동사적 의의>, 여성평우회창립2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여성평우회 발자취』,2003, 24~26쪽)
첫째, 창립총회에서 평우회는 자신의 창립경위를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창립경위에는 “1975년 세계여성의 해 이후, 한국에서 각 사회단체의 여성교육을 받은 젊은 층과 여성학을 수강한 젊은 층이 모여 82년 9월 여성단체를 결성할 것을 합의하다. 단체의 목적, 회원구성, 사업내용, 성격 등에 대한 논의를 가진 뒤, 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젊은 여성들로 회원을 구성할 것을 결정하다.” 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평우회가 기존 중산층 여성중심의 관변적 여성단체의 봉사, 취미, 여가활동 수준의 활동내용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강남식, 같은자료, 24쪽)
둘째, 여성학의 영향에 의해 새로운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 여성집단의 형성이다. 여성학은 1968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도교육과정에 등장하였으며 한국에서는 1977년 2학기에 이화여대에서 교과목으로 개설되었다. 여성학 강좌를 통해 서구 여성학 이론과 운동을 접한 여성들은 학부 졸업 후 연구자로서 여성학 교과과정 운영이나 개발에 참여하면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고 독자적인 운동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이 평우회 창립을 주도하게 되었고 평우회내에서 선배집단의 주축을 이루었다.
셋째, 학생운동 출신 지식인 집단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들은 70년대 중?후반부터 학내에서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들로, 연령은 대개 20대 중?후반으로 대부분 기혼이었던 선배그룹과는 달리 미혼이었고, 조직활동에 헌신적이었다. 이들은 대개 사회과학 학습 경험을 소유하고 있어 이념성이 강하고 정치투쟁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이 평우회의 후배집단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위 둘째 집단과는 차별화되는 정치의식 및 여성운동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평우회의 이념지향적 배경과 관련하여 김영정은 “여성평우회가 설립되면서 공개적인 여성운동조직에 의한 대중활동이 시작되었다. 여성문제의 근원을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찾고 변혁적 여성해방론, 민중적 여성운동론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영정, 『1980년대 한국여성운동의 성격에 관한 연구』, 숙명여대 석사학위논문, 2000, 19쪽) 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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