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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수배자 원주교구은닉 사건

제목(Title) :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수배자 원주교구은닉 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20405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2.04.05, 최기식 신부 등 관련자 연행
-04.11, 김수환 추기경, 부활절 강론에서 천주교 탄압 항의
-04.12,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항의 성명 발표
-04.15, 교회사회선교협의회, 항의 성명 발표

<사건배경>
82년 상반기 동안 전국을 들썩인 가장 큰 시국사건중의 하나는 바로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과 함께 연이은 사건 관련자 은닉사건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부산미문화원 방화 관련자들을 ‘시대의 패륜아’로 다루었으며 수배중인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자수를 시킨 천주교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 등을 연행, 구속했으며, 관제언론은 일련의 연속보도를 통해 사건을 확대시키기에 급급했다.

<사건내용>
82년 4월초 김현장, 문부식, 김은숙 등 사건 관련자들이 연행, 구속된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불똥은 천주교로 번져나갔다. 문제의 발단은 원주교구의 최기식 신부가 수배중인 이들 사건 관련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4월5일 최 신부를 비롯하여 이창복, 김영애, 문길환 등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4월 11일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 부활절 미사에서 최 신부의 구속사태에 대해, “지난 한 주일 동안 일부 매스컴이 마치 천주교가 범죄의 소굴인 것처럼 보도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라와 사회의 이익이 된다면 묵묵히 받아들이겠다”(동아일보, 1982년 4월12일자)며 우회적으로 정부와 관제언론을 비판했다. 12일 김승훈, 함세웅 신부가 주축이 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또한 항의 성명서를 통해 “교회는 문부식군과 김은숙양의 자수를 주선했고 김현장씨도 본인의 뜻에 따라 자수케 했다” 고 하며 “사제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사제의 입장”을 강조했다.(동아일보, 1982년 4월12일자)
이 사건은 정부와 언론이 시국관련 수배자의 은신처 제공을 빌미로 천주교를 ‘범죄의 소굴’로 몰아가면서 종교계의 민주화관련 활동들을 압박하려하면서 더욱 확대되었고 87년 민주화항쟁 당시의 명동성당과 종교계의 역할을 돌이켜보면 정부측으로서는 오히려 종교계의 반감만을 부채질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사전번호 : H-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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