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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추(학민추) 결성 및 학원자율화(학원민주화)투쟁

제목(Title) : 학자추(학민추) 결성 및 학원자율화(학원민주화)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303


사건종료일 : 198304


사건내용 : <사건경과>
-84. 03.09, 서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결성
-03.29, 고려대 학도호국단, ‘고려대자율화추진위원회’ 결성 결의
, 연세대 ‘학원민주화추진위’ 발족
-03.30, 서강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결성
-04.02, 서울대 학도호국단 및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학내민주화요구 단식농성(학생회관)
-04.03, 서울대 ‘교수와의 공개 좌담회’ 요구시위
-04.03~04, 서강대 학도호국단과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에 대한 각각의 신임투표 시행
-04.06, 서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학도호국단, 언론성토대회 및 화형식
-04.10~12, 서울대 ‘학원자율화 학원자율화 요구 도서관 철야농성

<사건배경>
83년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제한적 유화조치는 학원에도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83년 12월 구속된 학생양심수들이 대규모로 석방되고 사면?복권?복학되었으며, 정부의 학생운동에 대한 대응도 일정하게 온건한 형태로 변모했다. 이는 정부가 학원내 경찰철수 등을 통해 학생운동의 온순화 및 고립화의 가시적 효과를 노린 면도 있고, 82, 83년을 경과하며 학생운동 역량의 급성장에 따른 학내 경찰병력의 대응능력 부족의 표현으로도 평가되었다. (강신철 외, 『80년대 학생운동사』, 형성사, 1988, 51쪽)
84년 봄 신학기를 맞이하는 학생운동은 새롭게 조성된 유화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키 위해 3월9일 서울대를 필두로 주요 대학들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결성시켰다. 이 ‘학자추’는 호국단과 공동보조를 맞추며 학원민주화를 목표로 학원자율화의 완전실시, 강제징집 및 지도휴학 철폐투쟁, 관제언론에 대한 규탄시위 등을 전개해나갔다.

<사건내용>
학생들은 80년 신군부의 등장이래 억압되고 억눌린 감정들을 표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에는 경찰뿐 아니라 문교부 학원정책의 충실한 수행자였던 학교당국도 포함되었다. 당시 언론은 이에 대해 “(정부의) 자율화 조치 이후 지금까지 학생들이 요구해온 것은 주로 학칙개정과 학생복지증진 등 학내문제였고, 학생들은 이를 공청회나 학교측과의 대화 등의 방법으로 표현해왔다. 그러나 학생들의 움직임은 차츰 학내문제를 벗어나 정부 및 언론에 대한 성토 등 사회문제로 옮겨가고 있고 학생들의 행동도 화형식이나 학원밖 시위시도, 경찰관에 대한 투석 등으로 점차 격화돼가고 있다.” 며, 학생운동의 공개적 부활 조짐을 조합주의적인 이슈에 가두며 그 정치적 의미를 축소시키려고 했다.(조선일보, 1985년 4월8일자)
84년 3월에서 4월까지의 대학별 학내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대
3월9일 결성된 ‘학자추’와 학도호국단은 4월6일 오후 2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언론성토대회를 열고 “학원자율화 이후 언론들은 각종 기획물과 선별보도를 통해 학원문제를 왜곡보도해왔다” 고 주장하며 각각 신문-방송-문공부 등의 이름을 붙인 허수아비 화형식을 가졌다. 화형식 후 1천5백여 학생들은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출동한 5백여명의 경찰과 교문을 사이에 두고 30분 동안 대치했다. 서울대생들은 이에 앞서 4월3일 제2차 ‘교수와의 공개 좌담회’를 가질 것을 요구했으나 학교측이 정식절차를 밟은 7일의 좌담회를 종용하자 거부하고 아크로폴리스 일대의 장미 5백여 그루를 모두 뽑아버리고 잔디 일부를 불태웠다. 또 4월2일에는 학도호국단과 학자추 간부 20여명이 학생회관에서 학내문제의 조속한 개선과 4?19 기념제 개최승인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또 이날부터 교내 곳곳 ‘자유의 벽’에는 학교 당국의 적극적인 자율화 조치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연세대
4월6일 연세대생 2백여명은 교문밖 진출을 시도하는 등 교내시위를 벌이며 ‘관제언론 각성하라’, ‘학원사찰 중지하라’ 는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은 또한 ‘관제언론’과 ‘학원사찰’ 이라 적힌 팻말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달에는 학도호국단 주최로 2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학원민주화추진위’를 결성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주장은, 제적생 무조건적 복교, 학기제 개편의 부당성, 지도휴학제 등 학칙개정, 학내 언론의 활성화 등이었다.
■고려대
고려대 학도호국단은 3월29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4월13일 학생회관 앞 광장에서 ‘고려대자율화추진위원회’(가칭)를 결성키로 했다. 호국단은 이를 위해 4월11일 직접선거를 통해 단과대 대표 12명, 서클대표 5명, 학내 언론대표 2명 등 모두 19명의 추진위원을 선출키로 했다. 이에 앞서 학생들은 3월9일 공개토론회를 가진데 이어 22일에는 학생총회를 열어 자율화추진위 구성문제와 강제징집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강제징집 결사반대’를 결정한 뒤 앞으로 모든 논의 및 대책은 자율화추진위를 통해 결정키로 했다.
■서강대
서강대생들은 3월30일 공청회를 열어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4월3일과 4일 두차례에 걸쳐 학도호국단과 자율화추진위원회에 대한 신임투표를 붙여, 재학생 5천9백60명중 50.6%인 3천17명이 참석한 투표결과 88.9%가 호국단을 불신임하고 73.4%가 자율화추진위원회를 신임했다. 또한 4월6일 서강대생 50여명은 학도호국단을 성토하던 중 집회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마포경찰서 순경을 붙잡아 감금, 폭행을 가했다.(이상, 조선일보, 4월8일자 참조)

84년 3~4월달의 위와 같은 학원자율화투쟁은 이후 하반기에 부활하게 될 공개학생회를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대학간 공개조직연합의 틀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건사전번호 : H-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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