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기
야학연합회 사건

제목(Title) : 야학연합회 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30827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3.08.27, 야학교사 집단 불법연행
-12.20, 황주석 중부서 연행

<사건배경>
야학의 역사는 꽤나 길다. 야학은 1910년대 일제 식민치하에서 민족독립운동의 차원에서 민중계몽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야학은 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국가의 저열한 공교육수준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 되었으며, 그 대부분은 빈곤과 과소공교육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검정고시준비교육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70년대에 접어들면 야학의 성격은 변화하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 주변으로 몰려드는 국졸 내지는 중졸 출신의 청소년 노동자들은 배움의 열망뿐 아니라, 열악한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게되었고, 특히 대학생 출신의 교사들은 이에 부응하여 ‘노동야학’을 새로운 야학의 형태로 자리잡게 했다. 이들의 노동문제와 교육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사건은 단연코 전태일의 분신항거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서면 노동야학은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대도시 공장지역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야학은 또한 민중선교와 결합이 되기도 하였고 청계지역의 야학의 경우 교회의 정식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기까지 하였다.(청계지역 교사 외, <야학탄압에 대한 우리의 입장>, 『암흑속의 횃불: 7,80년대 민주화운동의 증언 제5권』,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1996, 618쪽)
한편 전두환 정부는 1982년 봄부터 노동야학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및 물리적?사상적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사건내용>
1982년 8월27일경부터 치안본부 직속 비밀수사기관은 야학교사들을 불법적으로 연행하고 가택수사를 하는 등 전면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연행된 교사들은 수사과정에서 장시간 밀실감금과 잠안재우기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며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의식화 교육’을 시켰다는 강제진술서를 요구받았다. 치안본부는 이런 과정을 통해 대학생 300명, 노동자 200명이 연루된 조직표를 작성하고 야학 전체를 사회주의 단체로 낙인찍으며 좌경용공의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82년 12월20일,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야학탄압에 저항하여 명동성당의 한 인권강좌에서 야학탄압의 진상과 야학의 정당성을 주장한 황주석(성수지역 야학교사)은 곧바로 중부서에 연행되기도 하였다.(위, 같은 자료)
이에 청계지역 야학교사들(82.12.27, <야학탄압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교회사회선교협의회(82.12.26, <근로자들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탄압중지를 요구하였다.


사건사전번호 : H-1038



연관자료 : 이 자료에는 연관된 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