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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지역 민주노조결성 및 임금인상투쟁

제목(Title) : 구로지역 민주노조결성 및 임금인상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4


사건내용 : <사건경과>
-84. 03.24, 대우어패럴 노조원(민옥자), 노조탈퇴강요에 음독자살 기도
-04.17, 대한마이크로 노조결성
-06.08, 가리봉전자 노조결성
대우어패럴 노조결성
-06.11, 선일섬유 노조결성
-07.14, 효성물산 노조결성

<사건배경>
정부는 85년의 총선을 앞두고 83년말 제적생 복교조치, 학원자율화 조치, 정치인해금, 해직교수 복직 등 일련의 유화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학생운동의 대중적인 투쟁력을 축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고, 노동운동 역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83년 말 태창, 태평특수 해고노동자들의 블랙리스트 철폐운동을 시발로, 84년에 들어 80년 정화조치로 해고된 노동자들 중심의 ‘한국노동복지협의회’의 창립, 청계피복노조의 복구대회(4월8일) 및 합법성쟁취대회(5월1일)는 이러한 노동운동 재고양의 정세를 상징해주었다. 이에 따라 84년 봄부터 신규 민주노조결성투쟁이 활발히 전개되는데, 그 중심은 구로공단지역이었다.

<사건내용>
본 자료에서는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를 중심으로 84년의 구로지역 민주노조결성투쟁을 살펴보기로 한다.

■ 대우어패럴
대우어패럴은 종업원 2,000명의 의류봉제 수출회사로서 근로조건을 살펴보면 평균일급이 2,850원 정도의 저임금이고 84년부터 ‘블랙시스템’이라는 조별 목표량 달성제도를 도입하여 노동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노동시간은 하루 10시간 근로가 정상근로이며 월평균 잔업시간은 80~100여 시간에 달할 정도였다. 여름철 실내온도는 30~40도에 이르고 겨울에는 난방시설이 없어 동상환자가 속출하며 상여금, 가족수당의 차별지급, 식사차별 등 관리직과의 차별대우가 심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다.
이러한 열악한 근로조건을 극복하고자 84년 6월7일 105명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되자, 6월16일에는 1,400여명이 노조에 가입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호응이 높았다. 노조가 결성되자 회사측의 탄압은 극에 달해 납치, 감금, 협박, 노조탈퇴강요, 노조행사 방해, 열성조합원 집단해고, 노조반대파를 동원한 파괴공작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항해 노조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서, 고발장, 진정서 등을 관계기관에 제출하기도 하고 84년 8월27일에는 납치사건에 항의하는 농성을 전개키도 했다. 그러나 사측의 노조파괴공작과 구타 등의 폭력행위는 조합원 집단탈퇴로까지 이어졌다. 노조는 10월15일~18일까지의 농성에서 사측으로부터 노조탄압중지 등의 약속을 받아내지만 농성해산과 동시에 보복조치를 가하는 회사의 기만성에 다시 10월25일 한국노총위원장실 점거농성, 31일에는 민한당사 농성을 전개하는 등 완강한 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노조의 비타협적 투쟁으로 회사도 노골적인 폭력은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측의 탄압이 완화된후, 노조는 일상투쟁을 전개해나갔다. 85년 1월 상여금 75%를 쟁취하고 2월 임금인상투쟁을 준비해나갔다. 노조는 일당 4,000원의 인상을 요구해서 결국 목표를 달성치는 못했으나 회사가 여름 보너스 20,000원 추가의 양보를 하게 됨으로써 40여일간의 임금인상교섭은 타결되었다.

■ 효성물산
효성물산은 종업원수가 약 500여명이며 노동시간은 정상근무 9시간에 평균 1~2시간의 잔업을 하고 있었으며 초임은 일급 2,200원의 저임금이고 작업환경은 아주 열악한 상태였다.
효성물산 노동자들은 7차례에 걸친 노조결성 시도 후에 7월14일 59명이 모여 노조결성식을 갖는다. 그 후 20명 외에는 모두 탈퇴서나 사표를 쓸 정도로 회사의 노조와해행위는 극심했다. 그러나 84년 8월 단체교섭과정에서 노조가입률이 급증하여 노조는 일당 1,080원 인상요구안을 내걸고 85년 임투를 준비했다.
그 외, 가리봉전자의 경우, 84년 6월8일 57명이 주도하여 노조결성식을 가진 후, 조합원 중심의 운영원칙을 토대로 민주적인 노조를 만들어나갔다. 선일섬유의 경우, 84년 6월11일 70여명의 노조원이 결성식을 가진 며칠 후 28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김장한 외, 『80년대 한국노동운동사』, 조국, 1989, 78~80쪽에서 요약정리)
이상 살펴본 노조들이 85년 6월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의 구속사건에 항의하는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구로동맹파업’ 이었다


사건사전번호 : H-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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