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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민 피해대책요구 시위사건

제목(Title) : 수재민 피해대책요구 시위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40903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4. 09.03, 망원동 수재민, 마포구청 1차 항의시위
-09.04, 2차 항의시위
-09.06, 풍납동 수재민, 강동구청 항의시위
-09.07, 난지도 주민, 수해철거대책 항의시위
-10.22, 망원동 주민(23명), 국가배상 신청서 제출

<사건배경>
1984년 8월31일부터 9월1일 낮까지 내린 집중폭우로 서울?경기 지방은 곳곳에서 산사태, 침수, 교통두절 등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9월1일 현재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서울?경기지방에서는 사망 27명, 실종9명, 매몰11명, 부상29명의 인명피해를 낳았으며, 서울시의 경우 가옥 1천9백83가구의 침수와 파괴로 7천1백여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동아일보, 1984년 9월1일자) 특히, 한강주변 지천에 위치한 마포구 망원동과 강동구 풍납동 주민들은 집중적인 수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유수지제방 붕괴와 배수갑문의 기능상실이 수재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되어, 관리 관청의 무사안일 행정에 대한 수재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수재민들은 근본적인 대책수립 및 피해배상을 요구했다.

<사건내용>
9월3일에 이어 5일 망원동 수재민 50여명은 마포구청 정문을 가로막고 구청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동아일보, 1984년 9월5일자) 또한 9월6일에는 풍납동 수재민 200여명이 강동구청 앞과 풍납동 태양금속 앞 네거리에서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가두농성을 벌였다. 주민들은 태부족한 구호물자 배급에 항의하며 불투명한 구호물자전달 경로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동아일보, 9월7일자)
그러나, 수재민들의 항의에 대한 관할 관청의 대응은 상당히 소극적이었고 면피용 발언만을 남발할 뿐이었다. 주민들과의 면담을 회피해오던 마포구청장 신현석(申鉉碩, 53)은 사고발생 당시 주민들의 신고전화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한 구청의 책임을 묻는 주민들의 항의를 “2일 상오 10시께 담당과장으로부터 한강이 새어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시공회사에 연락하여 조치를 취하도록 했으며 하오 4시께부터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며 비난을 피해가려 애썼다.(한국일보 1984년 9월7일자)
5공화국 6공화국 시절의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대형피해는 언제나 천재가 아닌 인재의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대형피해 직후 언론에서는 언제나 늑장행정, 전시행정, 비상조처미흡 등 행정기관의 책임과 관련 문제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았고, 무고하게 피해 입은 주민들은 행정기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며 자발적인 투쟁을 벌여나갔다. 이후 특히 망원동 395일대의 다섯 가구 주민들 23명은 피해배상을 받기 위해 법정투쟁을 펼쳐나갔는데, 이들은 한강변 수문 시공회사인 현대건설에 대한 민사소송외에 서울시를 상대로 하여 국가배상법상의 배상책임을 묻고자 하였다.(동아일보, 1984년 1월22일자)


사건사전번호 : H-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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