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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성추행 경찰규탄투쟁

제목(Title) : 여학생 성추행 경찰규탄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40904


사건종료일 : 19841120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4. 09.04, 청량리경찰서, 경희대 여학생 성추행
-10.20, 14개대 여학생회 연합, 여대생 추행사건 규탄대회
-11.03, 서대문경찰서, 고대 여학생 성추행
-11.16, ‘여학생 성추행사건 내?외신’ 기자회견
-11.20, 여학생성추행사건 규탄대회
-11.21, ‘여학생추행사건 대책협의회‘ 결성

<사건배경>
공권력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은 군부독재정권의 시기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문제였다. 그러나, 피해당사자들의 사건공개화를 가로막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남성활동가 중심의 운동사회에서 여학생 성추행 문제는 은폐돼 왔었다. 공권력의 성추행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관행처럼 활용되던 하나의 ‘여학생 시위접근 금지책’에 가까운 것이었다. 시위참가 이유로 일선 경찰서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전경들의 노골적인 신체접촉은 다반사였는데 경찰간부들은 이러한 성추행을 묵인했으며, 참여도 비중에 따라 남성 경찰 앞에서 알몸검사를 받아야 하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그것은 여학생들에게는 수치심을 유발시키고 경찰들에게는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경찰에 의한 시위참가 여학생의 성추행은 가부장적 공권력이 독재화할 때 벌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사건내용>
1984년 9월4일 경희대생 김영순은 방일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다른 2명의 여학생과 함께 청량리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연행 및 이후 구류과정의 상황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는 앉은 채로 끌려갔으며 서서 걸어가겠다고 말한 나는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으며 전경차에 올라가서야 옷이 다 찢어졌음을 알았다. 4일간의 보호조치 후 9월8일 즉결로 넘겨져 7일간의 구류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던 중 신체검사실에 전경이 들어와 심한 욕설과 모욕과 견딜 수 없는 수치를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경찰은 김영순에게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으라고 회유와 협박을 했다. 한편 11월3일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된 고려대의 한 여학생은, “여학생들이 반항하자 다른 장소로 끌고 갔다. 돌아온 여학생들은 탈진상태였다. 경찰은 이런 사실을 제보할 경우 유학도 못갈 줄 알라며 협박했다.” 그런데 서대문 경찰서에서의 피해사례에 대해서는 여학생들의 ‘탈진’의 구체적인 피해경험을 알 수가 없지만, 집단적인 성추행이 있었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이상, 고대신문, 1984년 11월19일자(985호, 축쇄판 9호 267쪽 참조)
이러한 경찰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여학생들은 규탄대회를 개최하고(84.10.20), 기자회견(11.16) 및 진상조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적극적인 저항행동을 조직화했다. 여학생들의 이러한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대응은 학생회조직 자체의 독립성을 향한 움직임에 합류하여 80년대 중반경에 이르면 기존의 총학생회로부터 자율적인 총여학생회의 건설로 이어지게 된다.


사건사전번호 : H-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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