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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산업 민주노조 결성투쟁

제목(Title) : 경동산업 민주노조 결성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5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5.01.14, 노조결성

<사건배경>
유화국면의 84년에 청계노조 합법성쟁취투쟁, 한국노협의 출범, 신규노조 200여개의 설립 등 민주노동운동은 새롭게 조직적 정비를 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추세는 85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특히, 서울의 구로공단은 이때부터 80년대 후반까지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울 정도로 노동자들의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활동들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민주노조건설의 흐름은 인천 등 수도권 전역의 노동현장에 영향을 미쳤다.

<사건내용>
인천시 북구 가좌동에 자리잡은 경동산업은 삼환그룹 계열의 스테인레스 소비제품을 생산하는 연간 생산실적 4,500달러, 노동자수 3,000의 대기업이다. 그러나 경동산업의 외형적인 사세의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전근대적 관리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냉난방 시설없는 작업장,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임금수준, 법정 수당의 미지급, 거기에다 “경동에서 잘려나간 손가락만 해도 아마 몇 트럭은 될 것이다.”라고 할 정도의 살인적인 산재유발조건 등의 노동환경은 노동자들의 높은 이직률로 입증된다.
경동산업 노동자들이 노조결성을 위한 준비를 최초로 시작한 것은 84년 봄부터였다. 그러나 노조결성에 관련된 정보들이 회사의 감시망에 포착이 되어 10월중순에 계획된 결성식은 수포로 돌아가고 관련 노동자들은 부서이동과 사퇴를 강요당했다. 정명자, 김흥섭, 한덕희 등 3명의 핵심 노동자들은 유인물 등을 배포하며 회사에 맞서 강력히 저항했다. 이들의 원직복직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마침내 85년 1월14일 경동산업 노동자들은 긴장감에 속에서 노조결성식을 치르고 위원장에 김흥섭을 선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정명자, 김흥섭, 한덕희를 해고시키고 노조간부 및 핵심 노조원을 대상으로 회유와 협박을 가하며 노조를 와해시키고자 했고, 인천시청 또한 설립신고서를 반려함으로써 회사측의 어용노조결성을 위한 길을 터주었다. 회사는 이러한 노조탄압과정에서 노조간부들에 대한 집중적인 사상공세 또한 가했는데, 동일방직 해고자 출신인 정명자는 경동을 도산시킬 임무로 입사했고 한덕희는 학생운동 출신이라는 등 간부들과 조합원을 격리시키려고 노력했다. 한편,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속연맹은 애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어용노조에게 연맹인준증을 발부하여 자신들의 어용성과 반노동자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결국 3월13일에 시작된 노조원들의 항의농성은 19일 강제해산 당하고 말았다. (이상,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 『민주노동운동을 향하여: 최근 노동운동 탄압 사례』, 1985, 43~57쪽 요약 재구성)
경동산업 민주노조결성투쟁에서 나타난 ‘민주노조설립→설립신고서반려→노조간부해고 및 어용노조결성→항의농성’으로 이어지는 정부와 회사가 공조하는 일련의 도식적인 노조와해 틀은 85년 상반기 구로공단의 신규노조결성 과정에서 그대로 다시 재현된다.


사건사전번호 : H-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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