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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김준엽총장 강제사임 반대투쟁

제목(Title) : 고려대 김준엽총장 강제사임 반대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50225


사건종료일 : 19850323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5. 02.14, 김준엽 총장, 사표 제출
-02.25, 총학생회, 성명서 발표 및 교내 항의시위
-03.06, 총학생회, ‘교권수호?학원민주화 대토론회’ 개최
-03.08, 학교, 김준엽총장 사표수리
-03.11, 85년 1차 학생총회
-03.15, ‘民族高大精氣 장례식’
-03.15~23, 수업거부
-03.20, ‘총장사퇴 결사반대 고대 총궐기대회’
-03.21, 임시총학생회, 이준범 신임총장 면담
, 조치원캠퍼스 교내시위
-03.22, 학생처장, 담화문 발표
-03.23, 학원민주화 19개 대학 연합집회(고대 수업거부 철회)

<사건배경>
85년 2?12 총선직후 전두환 정권의 패배감과 불안감은 극도에 달해있었고 그 여파는 2?18 개각 단행과 함께 대학가에도 불어닥쳤다. 2월13일 청와대 교문수석 손제석과 문교부장관 권이혁은 84년 11월14일 민정당사 점거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의 처벌에 소극적인 고려대 김준엽 총장에 대한 사퇴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을 거부하는 김 총장에 대해 문교부는 감사를 실시하여 교직원 자녀 입학특례를 꼬투리 삼았고, 김 총장의 2월14일 사표제출 이후 3월8일 재단이사회는 정부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게되자 김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러한 정부의 김준엽 총장 강제사임 배경에 대해 당시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꿰뚫고 있었다.
“김 총장 사임설은 작년 여름 본교가 가장 먼저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총학생회를 부활시키면서부터 대두하기 시작했는데, 민정당사 농성 관련 학생의 징계, 법대생 기말고사 처리과정 등에서 문교부 지침에 의거하지 않고 관련 학생처벌을 극소화하는 한편, 시험거부자에 대해서 재시험을 실시, 기말고사 거부학생을 구제하면서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었다.” (고대신문, 1985년 3월4일자)
이와 같은 강제사임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저항은 ‘교권수호 및 학원자율화 쟁취’라는 목표를 내걸고 전교적 차원의 총궐기형태로 한 달여간 진행되었다.

<사건내용>
총학생회는 2월25일 ‘김준엽 총장님의 강제사퇴에 전 고대가족은 분노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문교부의 총장승인권 폐지’, ‘교수재임용제 폐지’, ‘총학생회 인정’ 등의 요구를 주장하며 학원자율화투쟁의 일환으로 사임반대투쟁을 전개해나갔다. 고려대의 저항은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들도 동참하였는데, 정경대 교수들은 결의문 발표를 시도하며 “총장사퇴가 문교부 압력에 의한 것이라면 전 교무위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교권침해에 대한 문교부측의 해명을 요구하라” 는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고대신문, 1985년 3월11일자)
학생들의 투쟁은 7백여명이 참석한 3월6일의 ‘교권수호?학원민주화 대토론회’를 거쳐 15일의 ‘民族高大精氣 장례식’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민주광장에서 개최된 장례식은 5천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경대, 문과대 교수 50인과 총학생회가 공동상주가 되어 치러졌는데, 문교당국의 압력에 의한 김준엽 총장의 사표수리를 ‘고대정기사망’으로 간주했다. 부학생회장 허인회의 조사에 이어 두 번째 조사에 나선 서클연합회장 이택봉은, “80년 유구한 역사 속에 민족사학으로 자처했던 고대가 군부독재의 제물이 되다니 웬 청천벽력인가”라고 개탄하고 “문교부와 관제재단에 의해 고대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애도했다.(고대신문, 1985년 3월18일자). 학생들의 분노와 저항은 전교적 차원으로 확산되어 3월15일 문과대와 정경대의 수업거부는 일부 과를 제외하고 지속화되어 23일까지 전개되었으며 조치원 캠퍼스의 문리대, 경상대도 21일 격렬한 교내시위를 벌였다.
이후 3월21일의 ‘총장사퇴결사반대 고대 총궐기대회’, 21일 신임 이준범 총장의 유감표명 및 22일 김성복 학생처장의 학원자율화지지 담화문 발표 등을 분기점으로 하여 23일 고대에서 개최된 ‘학원민주화 19개 대학 연합집회’에서 총학생회측은 “수업거부는 23일까지 끝내고 25일부터는 사회민주화투쟁을 전개한다”고 결의하며 실질적으로 싸움을 종결시켰다.(고대신문, 1985년 3월25일자)


사건사전번호 : H-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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