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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사건

제목(Title) :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51118


사건내용 : <사건경과>
-85. 11.4, 전학련 ‘파쇼헌법철폐투쟁위원회’ 발족(서울대)
-11.12, 전학련 중부지역 ‘삼민헌법쟁취범국민투쟁위원회’ 대학생, 노동부 수원지방사무소 점거
-11.14, 서울시립대 등 4개대생, 민정당 정치연수원 1차 점거농성
-11.18, 전학련 파쇼헌법철폐투쟁위원회, 민정당 정치연수원 점거농성

<사건배경>
85년 10월 중순경부터 학생운동은 본격적인 개헌투쟁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특히 10월26일 연세대에서 전학련 전국대표자회의가 개최되어 성명서 발표와 함께 서명운동을 결의한다. 연이어 서울대에서는 ‘유신잔재척결과 파쇼악법철폐를 위한 민주화실천대회’가 열리고 10월 27일에는 8개대학 3천여명이 ‘삼민헌법쟁취’ ‘수입개방압력철회’ 등의 구호를 주장하며 교내시위를 벌였는데, 애당초 서노련이 제기하기 시작했던 ‘삼민헌법’이 학생운동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었다.(강신철 외, 『80년대 학생운동사』, 형성사, 1988, 123쪽)
11월4일, 전학련은 미상공회의소 점거농성을 감행한 후, 같은 날 ‘전학련 100만학도 56회 학생의날 기념식 및 보고대회’에서 ‘파쇼헌법철폐 투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3일, 전학련은 서노련 주도의 ‘전국노동자삼민통일헌법쟁취투쟁위원회’와 연대하여 ‘고 전태일 동지 15주기 추도식 및 파쇼헌법철폐와 삼민통일헌법 쟁취를 위한 범국민실천대회’를 개최하고 제기동, 용두동 일대에서 ‘군부독재타도’,. ‘노동악법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는 가히 ‘점거농성의 시대’라 칭할 만큼의 전국적이고 다발적인 점거농성투쟁이 전개되었고, 그 중 가장 대규모적이고 대표적인 투쟁이 바로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투쟁이었다.

<사건내용>
85년 11월 18일 오전 8시3분경, 서울대 등 서울지역 14대학생 191명(여학생 56명)은 서울 강동구 가락동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원장 鄭昌和) 본관 건물을 점거하고 6시간 30분동안 농성을 벌이다 오후 2시33분 전원 경찰에 연행되었다.
학생들은 ‘독재타도’, ‘미국은 물러가라’ 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내외신 기자회견과 국민대토론회의 개최를 요구하며, 경찰이 들어오면 석유와 프로판가스 등으로 분신, 자폭하겠다고 위협했다. 경찰은 정사복 경찰 12개중대 2천1백여명과 소방차 8대를 동원, 옥상에 물을 뿌리며 3차례나 진입을 시도, 3번째 가까스로 진압에 성공했다(조선일보, 11월19일자).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및 연행과정은 학생들의 완강한 저항을 낳았다. 학생들은 옥상에서 화염병과 각목으로 경찰의 진압에 맞섰고, 결국 경찰의 물리력을 감당하지는 못하여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홍익대 김영중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위 자료)
당시 학생들의 20개 요구 사항은, 군사독재정권의 퇴진, 파쇼헌법철폐, 광주원흉처단, 음모적 통일논의 즉각중단, 매판독점해체, 외자도입중단 및 500억불 외채동결, 미국자본철수, 노동운동탄압 중단 및 실업자구제책 보장, 전두환 일가 권력형부조리 공개 및 책임자 처단, 농축산물 수입개방철폐 및 농가부채 탕감, 도시빈민 생존대책 수립, 학원안정법 제정, 용공단체조작 등 학생운동 탄압중단, 표현예술의 자유보장, 교사탄압중단, 언기법?보도지침 철폐 및 KBS 해체, 민중운동에 대한 살인고문, 정보정치 중단, 양심수 전원석방, 야당의 파쟁중지 등 실로 당시의 민중, 민족, 민주운동의 제반 이슈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강신철 외, 『80년대 학생운동사』, 형성사, 1988 , 125~126쪽)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사회?정치적 이슈 외에, 여학생들(56명)이 독자적인 여성문제-가족법 철폐, 여성들의 조기정년제 및 결혼퇴직제 폐지 등-와 관련된 성명서를 따로 발표했다는 것이다.(조선일보, 같은 자료)


사건사전번호 : H-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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