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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입소 반대투쟁

제목(Title) : 전방입소 반대투쟁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60318


사건종료일 : 19860521


사건내용 : <사건경과>
-86.03.18,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회“ 발족(서울대)
-03.24, ‘학기중 전방입소 거부에 관한 범연세인 실천대회’(연세대)
-04.03, ‘서울대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 결성
-04.10,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 결성
-04.16, 자민투 산하 ‘반전반핵투쟁위원회’, 남영동 미군기지 근접시위 및 전방입소 거부운동
-04.21, 성대 전방입소 거부시위
-04.28, 서울대 김세진?이재호 열사 분신(신림 4거리)
-05.21, 서울대, 고대 전방입소 반대시위

<사건배경>
86년도 상반기 학원가의 핵심이슈중의 하나였던 것이 바로 전방입소 반대투쟁이었다. 특히, 구학련의 출범과 NL 계열의 반미투쟁중심노선은 대학 2학년생들의 전방입소 의무군사교육을 ‘미제양키의 용병교육’이라고 규정하며 대중적이고 격렬한 반대시위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같은 계열의 자민투의 발족(04.10)은 이 쟁점을 선도적으로 수행할 학생투쟁체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자민투는 특위 이름에도 ‘한반도 미제군사화 결사저지’를 목표로 하면서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제1구호로 내걸었다.(강신철 외, 『80년대 학생운동사』, 1988, 146쪽)

<사건내용>
서울대 자민투 명의의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선언’은 NL파의 전방입소 반대투쟁에 관한 정치노선을 배경적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다.
“첫째, 우리는 미제의 파쇼권력재편 기도를 분쇄하고 민주적 제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한다. 우리의 투쟁은 민중의 반제민족해방투쟁의 초석이 될 것이며 민중의 반제투쟁의 주체로서의 성장에 기여하고 민중의 민주적 권리실현투쟁의 불을 붙일 것이다. 둘째, 우리는 반전반핵투쟁으로 한반도에서의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투쟁한다. 미제의 전쟁도발은 현실이다. 양키 군바리들에 의한 여교사 윤간, 미 공군기지 폭발로 인한 민중의 생존권 박탈, 지속적인 전쟁분위기 조성에 의한 정치, 경제, 군사적 피해, 민중의 전쟁공포 등은 미제의 한반도에서의 전쟁도발이 현실임을 말한다.”(『선언으로 본 80년대 민족?민주운동』, 신동아 1990년 1월호 특별부록, 136쪽)
위와 같은 배경 하에서 4월 28일 당시 서울대 자연대학생회장이던 김세진과 자민투 산하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장인 이재호의 분신투쟁은 전방입소 반대투쟁의 대중적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 NL 대 CA의 대립 및 갈등 구도로 내홍을 앓고 있던 학생운동진영은 이 이슈에 관해서도 투쟁목표를 둘러싸고 일정한 갈등을 유발한다. 민민투의 출범과 함께 CA 진영은 전방입소반대투쟁이 ‘헌법제정민중회의’의 소집과 파쇼타도로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CA 노선이 지배적이었던 성균관대를 중심으로 NL파와의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사건사전번호 : H-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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