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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서울대생) 분신사망사건

제목(Title) : 이동수(서울대생) 분신사망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60520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81년 3월 숭실대학교 입학
1983년 서울대학교 농대 원예학과 입학
1983년 4월 군입대
1985년 10월 군제대
1986년 5월 20일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분신, 운명

<사건배경>
동년의 인천 5?3 사태 이후 정부측의 공세에 학원가는 잠시 움츠려드는 듯했으나, 정부측의 무자비한 탄압의 와중에서도 대중적 반발심리는 오히려 켜켜히 쌓여가고 있었다. 이러한 학원가의 이중적 상황에서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출구를 찾기 위한 학생 및 노동자, 민주운동가들의 몸부림이이어졌다. 5?3인천사태 직전의 김세진?이재호(4.28), 이동수 분신사망 이후에도 박혜정, 이경환, 강상천, 김남용, 백종수 등이 그들이다. 이들 자살사건들은 당시가 대정부투쟁과정에서 교착기 내지는 새로운 준비?모색기라는 일정한 과도적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건내용> 서울대 농대 원예과 1학년생 이동수(23세)는 5월20일 오후 3시20분경 서울대 학생회관 4층 옥상난간에서 분신한 후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폭력경찰 물러가라”, “미제국주의 물러가라”, “어용교수 물러가라” 등을 외치다가 7m 아래로 떨어져 중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오후4시경 숨졌다. 그는 분신하기 한 시간 전쯤인 이날 오후 2시경, 같은 과의 여학생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자작시가 들어있는 유서를 남겼으며, 여자친구에게 “학우 여러분 일본을 재조명합시다”라는 글을 내보냈었다고도 한다. 그가 분신할 당시 서울대에서는 약 3,000명이 모인 가운데 오후3시부터 5월제 행사의 하나로 문익환 목사의 “광주 항쟁의 역사적 재조명” 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첩 및 유서에 남긴 글들은 다음과 같다.
“요즘 같이 썩어빠진 군대가 어디 있는가? 주관을 갖고 군대생활해라, 짭새들이여, 경찰이라는 놈들도 자신을 속이는 짓을 하지 말지어다. 파쇼주구의 노리개들아 각성하라”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나에게 십자가가 허용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다.”
“오늘 파쇼주구 미제는 물러가라! 파쇼선봉 전두환을 타도하자, 최저임금제 보장하라, 광주항쟁 되살리라”
“민중은 말이 없지만 민중은 우둔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역사만이 나의 몸부림을 심판해줄 것이다. 엿먹어라 파쇼의 조무라기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노예가 된다. 사람의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획책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남의 눈에 눈물내면, 네 눈에는 피눈물 흐르리라”
한편, 앞서 밝힌 바대로, 같은날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던 문익환 목사는 분신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나도 오늘 죽었다. 나는 덤으로 얻은 생을 그대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김종철,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 김종철 정치 글 모음』, 한길사, 1992, 13쪽)


사건사전번호 : H-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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