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기
서울대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 개최

제목(Title) : 서울대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 개최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60523


사건내용 : <사건경과>
-1986.05.20, 이동수 분신
-05.21, 서울대생, ‘이동수열사 분신경과보고대회 및 비상학생총회’ 개최 및 수업거부 결의
-05.22, 서울대생, 도서관 점거농성 돌입
-05.23, ‘민족민주열사 위령제’,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

<사건배경>
1986년 5월20일 이동수의 분신은 5?3 사태이후 더욱 강경해진 정부의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을 극복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월초 개헌서명운동으로 촉발된 범국민적인 민주화 열망은 재야운동과 함께 학생운동의 든든한 지지대를 형성해주었다. 이에 따라 헌법투쟁기의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결속과 연대는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양대 민주화운동 진영의 연대는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로 구체화되었다.

<사건내용>
특히, 이동수의 분신은 서울대가 86년 5월투쟁의 중요한 보루가 되게끔 하였다. 서울대생들은 5월21일부터 5월 23일까지 도서관점거농성과 수업거부로 개헌열망과 민주화의지를 과시하며 민통련 등 재야인사들을 초청연사로 계획한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서울대의 상황을 날짜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5월21일-‘이동수 열사 분신경과보고대회’ 및 ‘비상학생총회’
서울대생 2천여명은 오후 1시30분경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이동수 열사 분신경과보고대회’ 및 ‘비상학생총회’를 갖고 서울대 ‘자민투’, 서울의대 ‘민민투’, 고려대 ‘민민투’ 공동명의의 유인물을 통해 ‘이원집정제 분쇄, 민주헌법쟁취, 노동3권쟁취, 광주항쟁계승?민족해방쟁취’ 등을 주장하고 24일까지 수업거부를 결의했다(한국일보, 1985년 5월22일자).
■ 5월22일-도서관 점거농성, 부산미문화원 점거농성 및 문익환 목사 연행 경과보고대회
서울대생 9백여명은 오후 4시30분경 도서관6층 제5열람실을 점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이원집정음모 분쇄하고 민주헌법쟁취하자’,‘광주학살 교사범 미제국주의 축출하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창문 밖으로 내걸었다. 또한 학생들은 이동수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부산미문화원 점거농성 및 문익환 목사 연행에 관한 경과보고대회를 가졌다(한국일보, 1985년 5월23일자).
■ 5월23일-‘민족민주열사 위령제’,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
‘민주헌법 및 민족자주화를 위한 범국민대토론회’에 앞서 경찰과 서울대 당국은 토론회의 원천봉쇄와 왜소화에 주력했다.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참가가 예상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서울시내 10개 대학 핵심운동권 학생 1백30명을 가택연금했으며, 토론회에 초청된 민통련과 민추협, 청계피복노조 등 14개 재야단체 인사 32명의 동향을 주시하고 서울대 주변에 나타나는 대로 격리시키기로 했다(동아일보, 1986년 5월23일자).
오후 2시부터 ‘민족민주 열사 위령제’를 개최한 서울대생 3천여명은 오후3시30분경 도서관에서 ‘범국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사건사전번호 : H-1091



연관자료 : 이 자료에는 연관된 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