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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연세대생) 최루탄 피격사망 사건

제목(Title) : 이한열(연세대생) 최루탄 피격사망 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870609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66년 8월 29일, 출생
1973년, 광주 동산국민학교 입학
1979년, 광주 동산중학교 입학
1982년, 광주 진흥고등학교 입학
1986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입학 /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활동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결의대회'에 참석, 시위 도중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직격 SY-44 최루탄에 피격당해 쓰러짐
1987년 7월 5일, 새벽 2시 5분 세브란스 중환자실에서 뇌손상으로 27일 동안 처절하게 투병하다가 운명
1987년 7월 9일, '애국학생 故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거행 /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사건내용>
지난 6월 9일 교내시위도중 최루탄 파편으로 보이는 물질에 머리뒷부분을 맞아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연세대생 이한열(李韓列)군(20?경영 2)은 10일에도 계속 의식불명인 채 산소호흡을 받고있으나 중태다. 安世熙 연세대 총장은 10일 이한열군이 중상을 입은 사건과 관련, 담화를 발표, “이군이 부상, 위독상태인 데 대해 놀라움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이런 일을 당한 부모님과 그 가족의 아픔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1987.6.11)
<삶과 죽음> (http://ugh.or.kr/hacksang/hacksang6.html#이한열)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이한열 동지는 연세대학에 입학하여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사진 전시회, 비디오를 보면서 그리고 학교집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사회의 무풍지대에서 살아왔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이한열 동지는 86년 2학기부터 실천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현실의 중심부에 뛰어들었다. 동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 중 '烈'자가 매울 열이라면서 자신과 최루탄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또 이름의 끝 글자가 같은 김주열군과 자신을 비교하곤 했다. 어쩌면 동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리고 그 곳에 참가한 동지는 그 투쟁 속에서 SY-44 직격 최루탄에 피격당하고 쓰러졌다. 이한열 동지의 피격사건은 전국으로 알려졌으며 학생, 시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궐기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거대한 87년 6월항쟁의 함성으로 이어졌다.


사건사전번호 : H-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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