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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용(경원대생) 분신사망사건

제목(Title) : 천세용(경원대생) 분신사망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910503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71년 5월 서울 출생
1990년 동북고등학교 졸업
경원대학교 전산과(2부) 입학
1990년 3월 경원대학교 민족사 연구회 '한얼'에서 활동
1991년 5월 3일 오후 3시경 '강경대 학우 폭력 살인 자행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도중 분신 후 투신하여 운명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사건내용>
(5월) 3일 오후 3시 20분쯤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학교 공과대학 건물인 창조관 2층과 3층 사이 국기게양대 난간에서 이 학교 학생 천세용군(20 전산과 야간부 2년)이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기도, 병원으로 옮겨진 뒤 7시간만인 10시 20분쯤 숨졌다. 천군은 오후 3시로 예정돼 있던 교내집회가 열리기 직전 신나를 끼얹고 난간으로 올라가 ‘학우여 이제 복수다, 6천 경원 단결하여 노정권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친 뒤 라이타로 불을 붙히고 7m 아래로 뛰어 내렸다. 천군이 떨어지자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건물앞 분수대 주변에 모여있던 학생 20여명이 달려가 옷 등으로 불을 끄려 했으나 꺼지지 않아 10분쯤 뒤 소화기로 불을 껐다. 천군은 동료학생들에 의해 부근 성남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기관지 절개 수술 등 응급치료를 받은 뒤 학생들의 요구로 다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천군은 분신한 3층 난간옆에 남긴 유서에서 “학우들이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 꽃다운 청춘을 불사르는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슬픔과 분노를 떨쳐 일어나 힘차게 투쟁합시다” 라고 적었다. (조선일보 1991.5.4)
지난 3일 분신 자살한 경원대생 천세용군의 장례식이 9일 낮 12시쯤 모교 운동장에서 범국민대책회의 성공회대성당 경원대 총학생회 등의 주최로 가족과 시민 학생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오후 2시쯤 천군의 유해를 앞세우고 성남시청 앞까지 행진을 한 뒤 시청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모란공원 묘지에 유해를 안장했다. (조선일보 1991.5.10)


사건사전번호 : H-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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