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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 분신사망사건

제목(Title) :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 분신사망사건


Subject :


사건발생일 : 19910508


사건내용 :
<약력> (추모연대 홈페이지 : http://ugh.or.kr)
1965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83년 인천 수도전기통신고 중퇴
1984년 대입검정고시 합격
1988년 성남 민주화청년운동연합 가입
1989년 성남 노동자의 집에서 상담간사로 활동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본부 사회부장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폭력살인 만행 노태우정권 타도하자"고 외치며 분신한 후 투신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삶과 죽음> (http://ugh.or.kr/ja/jaya1.html#김기설)
동지는 1988년 9월 성남민청련 창립대회에서 강연을 듣고 즉석에서 성남민청련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성남민청련 노동분과 소속, 지역 노동운동 단체들을 지원 연대하는 사업에 열의를 갖고 참여하다 민청련이 해체되면서 성남노동자의 집에서 교육상담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동지는 노동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조광피혁 등에 입사했으나 성남 민청련에서의 활동이 드러나 쫓겨나곤 하였다. 91년 1월부터 전민련에서 사회부장으로 일하게 되어 활동하면서 노태우정권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민족적 폭압을 새삼 인식하였으며, 강경대 동지의 죽음 이후 범국민 대책회의에 참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던 중 분신을 결행하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여러 사람을 불법연행하여 강압수사를 벌여 유서대필이라는 상식이하의 조작으로 동지를 두 번 죽이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사건내용>
(5월) 8일 오전 8시 5분쯤 서울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26)가 몸에 신나를 끼얹어 불을 붙이고 뛰어내려 자살했다. 김씨는 옥상에 남긴 유서에서 아프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 끝에 자살키로 결심했다며 민자당은 해체하고 노정권은 퇴진해야한다고 썼다.
검찰은 4번째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지금까지의 검찰대응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듯 투신현장 확인과 사체검시 등 초동단계부터 검사들을 직접 투입키로 하는 등 적극대처하는 모습이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의 사체검시도 학생들이 분신자살사건의 배후를 수사한다는 검찰 방침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검시를 막아 학생들을 설득하고 대책회의측과 협상을 벌인 뒤 오후 4시 30분쯤부터야 검시에 들어갔다. 검찰은 주변정황이나 목격자 진술을 들은 뒤 자살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면 부검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991.5.9)
지난 8일 분신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영결식이 12일 낮 12시 서강대 교내 광장에서 김씨의 가족과 대책회의 학생 재야단체 회원 등 1천여명이 모인 뒤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재야단체 회원 1천여명은 김씨의 대형 영정을 실은 트럭을 선두로 ‘김열사의 뜻 이어받아 살인정권 타도하자’ ‘부활 김기설’ 등의 만장 50여개를 들고 전민련 회원 10여명이 김씨의 유해를 운구하는 가운데 신촌로터리까지 행진, 노제를 가졌다.(조선일보 1991.5.13)

<연구팀 자료>
□ 항거 대상 - 노태우정권의 권위주의 통치
□ 항거 행위
○ 김기설(1965. 11. 27 생; 1991. 5. 8. 망)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본부 사회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1991년 5월 8일 서강대학교 본관 옥상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후 투신함.
□ 민주화 기여 여부 - 노태우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대함으로서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
□ 기타 참고사항 - 관련자의 분신사건은 강기훈씨에 의한 유서대필 여부 논란을 야기한 사건임.


사건사전번호 : H-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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